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시는 군역(軍役) 면제자인 승려의 수를 억제하여 군정(軍丁)을 확보하려는 군사·경제적인 의도도 있었지만, 불교 교세의 인적인 기반을 제약하여 불교를 억압하려 했던 데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이 제도는 조선 태조 때부터 강화되어, 승려가 되기를 원할 경우 양반의 자제는 포(布) 100필, 서인은 150필, 천인은 200필의 정전(丁錢)을 각각 바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세조 때 이 제도를 새롭게 조정하여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교종(敎宗)이나 선종(禪宗)의 본산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한 뒤 포 30필을 정전으로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