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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허스키161
까칠한허스키16123.05.01

조선시대 도첩제 실시 이유??

안녕하세요.조선시대에 도첩제를 실시해서 승려들의 출가를 제한하였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의 인식이 안 좋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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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1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첩제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시작되어 당나라에서 제도화되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말기부터 제도화되어 조선 초기에 강화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첩체는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을 그 배경으로 자유로운 출가를 제한하고 불교를 국가적인 통치하에 예속시키기 위해서 시행되었다.

    실시는 군역(軍役) 면제자인 승려의 수를 억제하여 군정(軍丁)을 확보하려는 군사·경제적인 의도도 있었지만, 불교 교세의 인적인 기반을 제약하여 불교를 억압하려 했던 데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이 제도는 조선 태조 때부터 강화되어, 승려가 되기를 원할 경우 양반의 자제는 포(布) 100필, 서인은 150필, 천인은 200필의 정전(丁錢)을 각각 바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세조 때 이 제도를 새롭게 조정하여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교종(敎宗)이나 선종(禪宗)의 본산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한 뒤 포 30필을 정전으로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세조 때 개정된 도첩제의 내용은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있지만, 이 또한 엄격하게 시행되지는 못하였다. 1477년(성종 8) 도첩이 없는 승려를 색출하는 책임을 지방의 관찰사에게 맡겼으며, 1492년 도첩제를 폐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국가가 막았다.

    1541년(중종 20) 승인호패법(僧人號牌法)을 시행하여 도첩제를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은 1461년(세조 7)이었고, 성종이 즉위한 1469년에 폐지했다가 이때 다시 시행되었으며, 도첩제가 다시 실시되었던 1550년(명종 5)까지 계속되었다.

    1566년 다시 도첩제가 폐지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승려가 되는 것을 묵인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승인호패법이 다시 시행되다가 1612년 폐지되었다.

    이와 같이 도첩법은 시행과 폐지를 거듭하였고, 또한 엄격하게 실시되지 못하여 관리들과 결탁한 승려들은 쉽게 도첩을 얻어 낼 수 있었고, 국가적인 토목공사에 동원된 부역승(赴役僧)에게 도첩 또는 승인 호패가 지급되기도 하였다.

    세종 때의 흥덕사(興德寺) 및 흥천사(興天寺)의 보수공사, 세조 때의 유점사(楡岾寺)·회암사(檜巖寺)의 중수공사, 성종 때의 창경궁(昌慶宮) 창건 및 개경사(開慶寺) 중수공사, 중종 때의 견항방색공사(犬項防塞工事) 등 당시의 토목공사에 동원된 수천 명의 승려들에게 도첩이 지급되었다.

    1911년부터 시행된 <조선사찰령 朝鮮寺刹令>과 <사찰령시행규칙 寺刹令施行規則>에 의하면, 당시에는 31본산의 주지가 도첩을 발부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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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승려가 되면 군역과 부역이 면제됨은 물론 식량등의 물질적 혜택까지 있었기에

    이를 위해 가짜 승려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막기위해 승려 인증제도인 도첩제를 실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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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억불숭유 정책을 표방하면서 일반 양인들이 승려로 출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습니다. 양인의 승려화는 농민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조세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의 약화를 초래, 보다 근본적으로 불교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숭유억불을 주창하는 정책과 배치되었으며 나아가 군역에 충당해야 할 양인이 승려화되면서 군역이 감소되는 부정적 요소도 차단해야 하여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자 하는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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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첩제 > 승려가 출가할 때 국가가 그 신분을 공인해 주던 제도 입니다.

    도첩제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시작되어 당나라에서 제도화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말기 부터 제도화 되어 조선 초기에 강화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도첩제는 억불숭유정책을 그 배경으로 자유로운 출가를 제한하고 불교를 국가적인 통치하게 예속시키기 위해서 상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세조 때 실시한 승려 신분증 제도는 고려시대 불교국가로 승려의 수가 매우 많았습니다. 조선 초 아직 왕권이 확립되기 전에 이를 모두들 양민으로 만들면 반란 등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세조 때 승려 신분증을 만들어 극히 소수만 승려로 인정해 주고 대다수는 양민으로 만든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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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시는 군역(軍役) 면제자인 승려의 수를 억제하여 군정(軍丁)을 확보하려는 군사·경제적인 의도도 있었지만, 불교 교세의 인적인 기반을 제약하여 불교를 억압하려 했던 데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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