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통상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1863년 조선 고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해 그의 아버지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에 봉해지고 정권을 장악, 그가 집권할 당시 국제 정세는 열강의 제국주의 확장으로 인해 혼란스러웠으며 미국, 러시아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한반도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몰려와 통상을 요구, 때에 따라 무력 도발 및 시위를 자행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집권 초,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교섭을 시도하나 병인양요의 발생과 오페르트도굴 사건 이후 통상수교거부 정책 기조를 급선회하며 특히 1871년 신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은 조선왕조 질서 유지를 위해 외국과 수교와 통상을 금하는 쇄국정책을 세웠고 이를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1871년 음력 4월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 200여 곳에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