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느림보거북이1
느림보거북이123.02.28

왜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나요

안녕하세요 홀쭉한타킨이11입니다 .

우리나라의 여러 왕조중에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다고 알고있는데 왜 신라

에만 여왕이 있었나요

아니면 신라말고 다른 국가에도 여왕이

있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골품 제도라고 하는 신분 제도때문에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습니다

    왕족에는 성골과 진골이 있었고, 벼슬, 결혼, 옷차림, 집 등 모든 것을 신분에 따라 정해진 대로 따라야만 했답니다.

    왕을 뽑을 때도 이 골품 제도를 따라야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왕족인 사람을 '성골'이라 했는데,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26대 왕인 진평왕이 세상을 떠난 후 진평왕에게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어서 왕위를 이을 성골 남자가 없었습니다. 성골 중에는 진평왕의 딸인 덕만 공주가 있었지요. 성골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성골이 왕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덕만 공주가 왕이 되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러니까 성골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골품 제도 때문에 신라에 여왕이 세 명이나 있었던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성골출신만 왕이 되었습니다.

    성골이란 왕족을 말합니다.

    왕족 끼리 혼인을 해야 왕이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근친끼리 혼인을 하게 되었고 남자가 없어서 여왕이 태어난 것이라 합니다.

    간단히 답변 드렸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가운데 여왕이 있었던 나라는 신라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라에 있었던 특이한 왕위 계승 제도에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내용에 대해 조사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기 631년 진평왕이 죽은 후 신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진평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고 그의 형제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친척 중에 선정하여 왕의 자리를 이어받으면 되지 않나 지금의 생각으로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신라 왕실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품제도라는 신라의 왕족제도 때문입니다.
    6개의 부족이 모여 살았던 일종의 6부족 연맹국이었던 신라는 법흥왕 무렵 고대국가로 성장하여 부족은 사라지고 그 지배층은 서라벌로 모여들어 높은 관직을 부여받습니다. 6부족이어서인지 신부계급을 여섯 단계로 나눈 6두품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왕위를 이을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누었습니다. 성골은 왕의 직계 자손, 진골은 왕의 친척들로 구분하였습니다.
    진평왕이 사후 궁에는 남자 성골이 없었지만, 아들이 아닌 선덕 공주가 있었습니다. 왕실에서는 회의를 거듭한 끝에 골품제를 지키기 위해 선덕 공주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고 처음으로 여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남자가 왕이었을 때보다 오히려 나라를 강하게 다스려 국제관계에서 신라의 지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죽자 역시 왕실에 남자 성골이 없었기에 다시 한번 사촌인 진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신라 역사에 있어서 2번의 여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진덕여왕이 죽은 다음에는 왕실에 여자 성골마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성골보다 한 단계 아래인 진골에서 왕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입니다. 그가 왕이 되고 신라는 당의 힘을 빌려 안타깝기는 하지만,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서는 신라만이 여왕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최근까지 왕위를 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듯이 여왕이 있어왔습니다.

    외국에서는 고대문명에서부터 나이지리아의 아니나 전사 여왕, 고대 켈트족의 부디카 여왕, 멕시코의 카를로타 여왕, 페르시아의 에스더 여왕, 중국의 부호여왕, 측천여제, 고대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파라오, 일본 최초국가 야마타이 히미코 여왕(무녀이자 군주), 수메르의 푸아비 여왕, 영국의 빅토리아, 엘리자베스 여왕 등 많은 여왕들이 존재했습니다.

    대부분은 모계사회의 고대 부족국가의 경우 여왕이자 무녀, 신녀로 통치하는 경우가 많아 그랬었고, 제대로 된 국가의 형태를 갖추면서는 대부분 갑자기 왕이 서거하거나 하여 그 왕후가 왕이 되거나, 직계 혈통 등의 문제로 서열에 따라 여왕이 되는 경우인 듯 합니다. 우리 역사의 선덕여왕, 진덕여왕도 직계혈통 및 서열에 따라 특이한 골품제도에 의해 왕이 된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에는 골품제도가있었는데, 왕골에는 성골과 진골, 귀족은 육두품, 오두품, 사두품, 삼두품, 이두품, 일두품으로 나뉘었습니다.

    왕을 뽑을때 이 골품제도를 따라야했는데 부모가 모두 왕족인 사람을 성골이라 하여 성골만이 왕이 될수있었습니다.

    26대 왕인 진평왕이 세상을 떠난 뒤, 진평왕에게는 아들, 형제도 없어 왕위를 이을 성골남자가 없어 성골 중 진평왕의 딸인 덕만공주가 여왕이 될수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왕조 중에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일부 사실과 다소 착각이 섞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신라 왕조에서 여왕이 있었던 것은 그리 많은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신라의 최초 여왕은 성덕여왕(在位 632년 ~ 647년)으로, 이후 몇몇 여왕들이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왕조에서도 여성이 왕위에 올랐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에서는 여성 왕을 '대무신'이라 불렀고, 백제에서는 여성이 대왕의 어머니나 왕후 등의 지위를 맡았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인조시대의 숙종 여왕이 권력을 행사하는 등 여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일부 사실이나 착각이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왕조에서도 여성이 권력을 행사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신라에만 유독 여왕이 있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왕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 유력한 왕족의 한 사람이 왕위를 계승하면 되었다. 반면에 신라에서는 성골(聖骨) 신분이 아니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