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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3.08.27

고려의 승려는 관직이 허용되었나요?

신돈처럼 승려가 권력을 장악한 사례가 있는데 고려에서는 승려가 승려의 신분에서 벗어나지않고 국가에 등용되어 일하는것이 가능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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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승려 출신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왕의 임명으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제31대 공민왕이 개혁 정치를 위해 등용한 인물로 개혁자라는 평가와 요승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개혁자라고 보는 쪽에서는 강제로 노비가 된 평민들을 노비에서 해방한 것과 전민변정도감의 설치를 통해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정책을 폈던 점을 강조하는 반면, 요승이라는 근거로는 과도한 권력 욕심, 최악의 처신, 불교 축제와 제사를 열기 위해 자주 일으킨 백성 수탈, 정도가 심한 부녀자 희롱과 겁탈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를 등용했던 공민왕과 여러모로 유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제도의 승과에 합격한 사람들은

    승록사(僧錄司)의 관직을 받았습니다.

    승록사의 조직 구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많지 않으며, 좌가(左街)와 우가(右街)를 나누고 도승록(都僧錄)⋅

    부승록⋅승정(僧正)⋅승유(僧維) 등을

    둔 것으로 추정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려의 승려는 관직이 허용되었습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승려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승려들은 국가의 교육, 문화, 사회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고려의 승려가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불교는 국가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승려는 국가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려는 유교 국가였지만, 유교는 종교가 아닌 도덕과 정치의 이념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승려가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고려의 승려들은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습니다. 따라서 승려들이 관직에 진출하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고려의 승려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른 규제도 있었습니다. 승려는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수업을 받아야 했으며, 재산이나 가족이 없어야 했습니다. 또한, 승려는 관직에 진출하더라도 승려로서의 직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고려의 승려가 관직에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신라의 승려인 의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고려의 건국을 도운 인물입니다.

    고려의 승려인 안국사는 고려의 3대 왕인 혜종의 스승이자, 고려의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고려의 승려인 일연은 고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한 인물입니다.

    이처럼 고려의 승려는 관직에 진출하여 국가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승려의 관직 허용 여부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승려의 관직 허용이 제한되었으나, 후기 고려시대에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고려 초기(918년 - 12세기 중반)에는 승려들이 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제한하는 법령이 있었습니다. 왕실과 관료들은 승려들이 관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였는데, 이는 승려들이 권력을 누적하거나 왕권을 도전하는 요소로 여겨져서였습니다.

    하지만 후기 고려시대(12세기 중후반 - 1392년)에는 이러한 정책이 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려 말기에는 승려들이 관직에 임명되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했고, 고려 왕실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 말기 왕실과 관료들은 고려의 왕족 출신인 승려들을 인재로 삼아 중요한 관직에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초기에는 승려의 관직 허용이 제한되었으나 시대 변화에 따라 후기에는 관직 허용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