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군대를 5개월만에 진압되었습니다. 진압 이후 조정에서는 반란의 주동자를 처벌하였습니다.
홍경래는 총에 맞아 죽었고 반란군의 지도부는 모조리 사망하거나 생포되었습니다. 생포된 남정 1,917명은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이 난은 실패로 끝났지만 조선 사회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어 농민들의 저항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홍경래의 난이 진입된 이후에도 "죽지 않고 하늘을 날아서 성을 빠져나갔다."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서북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서북인의 불만이 더욱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