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때 발해는 왜 삼국에 안들어갔나요?
안녕하세요
후삼국시대에는
후고구려, 후백제, 통일신라 이렇게 있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동시대 때 발해도 있었는데 왜 발해는 안끼워준건가요? (발해가 있었으면 사국이였을텐데...)
혹시 발해는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라그런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이유는 발해사의 기록이 다른 왕조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등 삼국의 역사는 《삼국사기》에 「고구려본기」 등을 갖고 있어 그나마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하지만 발해사는 당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기록한 《구당서》와 《신당서》 내용이 가장 체계적일 뿐이고 다른 것들은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발해의 역사가 어떠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의 부분이 더 많은 상태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족계통이나 왕조적 정통성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의견차가 심하다고 하겠습니다. 즉 한국은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발해가 지배층이나 피지배층이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고구려와 다른 ‘말갈(靺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북국시대의 북국에 해당하는 발해가 잔존했기때문에 후삼국시대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는 신라가 적어도 외교적으로 발해를 압도해 발해가 고려란 국호자체를 쓰지 못하게 한 당대의 외교적 현실을 간과한 것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주장이 지금 생각처럼 그렇게까지 실질이 없진 않습니다. 고구려가 668년 망한 이래로 그 국호를 대놓고 다시 써도 누가 뭐라 하지않던 나라는 궁예의 태봉과 왕권의 고려가 처음이므로 후삼국시대라고 구분하며 발해가 통일신라에 비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낮고 거란과의 전쟁에 치중한 나머지 이 시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는 후삼국시대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발해가 후삼국 시대의 주요한 쟁점이었던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의 정치적 지배력 경쟁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한 독자적인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후삼국시대는 900년에서 936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 동안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고려)가 각각의 국가로 발전하고 서로 경쟁하며 통일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발해는 후삼국 중 어느 한 국가의 진영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한 별개의 국가였습니다.
발해는 현재의 한반도 북동부 지역인 현대의 한성(한국의 동북쪽 경계)과 중국 동북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에 위치한 고려 시대 이전의 독립국이었습니다. 발해는 고려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문화와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려의 통일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존속하다가 10세기 말에 고려에 흡수되었습니다.
따라서, 발해는 후삼국시대에는 속하지 않았으며, 후삼국 통일의 주요 국가로서의 역할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후삼국 통일의 과정에는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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