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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말똥구리64
완벽한말똥구리6423.06.07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 위해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했다는데 이해되지 않습니다.몽고가 말을 키우기 더 좋은 환경아입니까? 지어낸 이야기 아닌가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 것울 보니 옛 부터 재주도 말이 유명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옛날 몽고에 반지배를 받았을 때 좋은 말을 얻기 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기르고 다시 몽골까지 가져갔다는데 그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몽골이 말을 키우기 더 좋은 환경이고 자신들이 평생 타온 말인데 더 좋지 않나요? 잘못 전해진 이야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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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방조직은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던 목장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졌는데, 각 목장에는 목감직(牧監直)과 노자(奴子: 뒤의 牧子)를 배치해서 말 사육에 종사하게 하고 또 간수군(看守軍)인 장교와 군인을 배치해서 감독하도록 하였습니다. 목감직의 지위는 병과권무직(丙科權務職)으로, 연 녹봉 8석 10두를 받는 최하층의 관직이었습니다. 노자는 천인 신분으로 청초절(靑草節: 春·夏·秋期)에 대마(大馬) 네 필을 사육하는 것을 직책으로 하였는데, 그 직이 고역(苦役)이었습니다.

    1276년(충렬왕 2)에, 몽고가 탐라도(耽羅道: 제주도)에 목마장을 건설하고 몽고의 말과 몽고인 말 사육전문가인 목호(牧胡)들을 계속 파견하여 목마사업을 적극화함으로써 그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종래 말 사육에 종사하였던 노자는 목자로 개칭되는 동시에 그 신분도 차츰 신량역천(身良役賤)의 계층으로 전화되어갔습니다.

    한편 지방조직의 단위가 되었던 목장은 『고려사』 병지 마정조(馬政條)에 용양(龍驤: 黃州)·농서(隴西: 洞州)·은천(銀川: 白州)·양란(羊欄: 開城)·좌목(左牧: 貞州)·회인(懷仁: 淸州)·상자원(常慈院: 見州)·엽호현(葉戶峴: 廣州)·강음(江陰)·동주(東州) 등 10개의 목장명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밖에 전국 각지에 목장이 설치된 기록이 전하고 있고, 또한 신라시대에 174개의 목장이 있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약 160개 정도의 목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중 탐라목장은 그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고려시대 마정으로 특기할 것은 말 사육책에 획기적 조처를 취한 것입니다. 즉 1025년(현종 16)에는 노자들의 직책을 명시하여 청초절에 대마 네 필을 사육하여 새끼를 생산하도록 하되 사육방법에 있어 마료(馬料)는 계절에 따라 종류와 수량의 차를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