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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777
나무77723.04.03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는 누구인가요? 어떻게 배웠고, 실제 비행기를 몰았는지 궁금하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는 누구인가요? 실제 비행기를 몰았는지, 어느 나라 비행기를 몰았는지 궁금합니다. 전문가님들의 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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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3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는 안창남입니다.

    조선의 하늘을 처음으로 날았던 대한(大韓) 남아 안창남(安昌男, 1901~1930). 그는 과학기술을 통한 독립운동을 펼친 선구자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보통중학교를 중퇴하고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술을 배웠다. 1921년 일본 도쿄 오쿠리(小栗)비행학교를 마치고 비행사 자격증을 따면서 민족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안창남을 초청해 한국인 최초로 한반도의 하늘을 날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안창남 고국방문후원회가 결성되고, 비행기 구입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안창남은 1922년 11월 일본 비행협회가 주최한 도쿄~오사카 간 왕복 우편비행대회에서 일본인 비행사를 제치고 우승을 하며 한국인의 기상을 세상에 알렸다. 조선인 천재 비행사의 탄생 소식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에 상륙했다. 모든 신문은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마침내 동아일보사 초청으로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이 성사됐다. 1922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간이비행장. 일제는 유사시 군사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곳곳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가장 먼저 건설된 비행장이 바로 여의도 비행장이었다. 비행장은 1916년 10월 건설됐는데 초기에는 간이 형태였다.

    이날 안창남은 우리나라 항공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비행을 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에도 이를 보기 위해 5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당시 경성 인구는 30만 여 명이었다. 삭막한 여의도 벌판에는 사람으로 숲을 이뤘다.

    안창남이 탄 비행기는 단발쌍엽(單發雙葉)의 1인승 ‘금강호(金剛號)’. 일본 오쿠리 비행학교 소속의 영국제 비행기였다. 금강호는 여의도를 이륙해 하늘로 치솟았다. 비행기는 남산을 돌아 창덕궁 상공을 거쳐 여의도 상공에서 고공비행의 묘기를 선보였다. 당시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준 비행이었다. 세간에서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란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안창남은 국민의 영웅이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는 안창남이다? (의심 많은 교양인을 위한 상식의 반전 101, 2012. 9. 24., 김규회, 황선정, 송진욱)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안창남(安昌男, 1900년 3월 19일 ~ 1930년 4월 2일)은 한국의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오사카시 오사카 자동차 학교에서

    2개월간 자동차 운전을 배운 뒤 1920년

    봄에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비행기 제조법에 이어 조종술을 공부해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비행학교의 이수 과정은 6개월이었고,

    학과 교육인 비행보다는 기술교육에

    치중했기 때문에 6개월 과정만 거치면

    조종간을 잡을 수 있었다.

    -출처: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권기옥은 1925년 2월 28일 윈난항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4월 20일 중화민국 본부 '항공처 부비행사 임명장'을 받았으므로 권기옥이 박경원보다 몇 년 앞섰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반도에서 비행을 한 조종사는 일본에서 비행을 배워 1922년 조종사가 된 안창남입니다. 그는 훗날 귀국하여 최초의 항공회사를 설립하여 우리나라 항공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조종사는 1918년 미국에서 조종사가 된 이응호입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안창남은 1922년 11월 일본 비행협회가 주최한 도쿄~오사카 간 왕복 우편비행대회에서 일본인 비행사를 제치고 우승을 하였습니다.

    한국인의 기상을 세상에 알린 일이었습니다.. 조선인 천재 비행사의 탄생 소식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에 상륙하여

    우리 민족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안창남, 서왈보, 윌로스 비행학교 교관 6명. 그들은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늘을 날았던 애국 비행사들이었습니다.

    특히 안창남은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 넣어준 진정한 최초의 비행사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첫 번쨰 조종사는 바로 안창남 입니다. 1920년 8월 일본의 비행학교에 입학한 안창남은 입학 두 달 만인 10월 15일 오쿠리 교장이 '아사히버선' 광고지 20만매를 도쿄 시내에 뿌릴때 일본인 연구생을 제치고 그의 조수로 비행기에 동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남들은 1~2년이 걸리는 졸업과정을 불과 3개월 만에 마친 그는 학교측의 간곡한 권유로 비행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교수가 된 지 한달만인 1921년 5월 일본최초로 치뤄진 비행사 자격시험에 참가하여 17명의 응시자 중 유일한 우리나라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하에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던 안창남은 1922년 12월 10일 한국지도를 그려 넣은 쌍엽기 금강호를 요꼬하마 항으로 부터 인천항으로 수송하여 조립하여 방문 비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는 백남준(1897~1966)입니다. 백남준은 1924년 미국에 이민하여,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며 항공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항공 학교에서 백남준은 비행 이론과 기초적인 비행기 조종 기술을 배우고, 이후에는 실제 비행기에 탑승하여 비행을 연습하였습니다. 그의 열정과 노력 덕분에, 1927년에는 미국 항공 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백남준은 그 후에도 항공 기술을 연구하고, 한국 국내에서는 항공 발전을 위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에도 항공 작전에서 활약하였으며, 이후에는 한국 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백남준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로서, 우리나라 항공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업적은 한국 항공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항공 역사에도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비행사는 안창남 으로 21세에 일본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해 6개월 과정교육을 마치고 다음해 1921년 5월 비행면허시험 수석합격했습니다.

    1922년 12월 10일 안창남은 동아일보의 주최로 열린 고국방문대비행회 식장에서 5만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해 서울 시내를 상공한 뒤 다시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