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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24.03.27

김영삼 대통령시절 쿠테타없이 하나회를 숙청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을 지나 김영삼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가장먼저 시행한 것이 군부내의 세력인 하나회장군들 및 영관들의 숙청이었습니다.

집권초기에 상당히 신속하게 이루어진것으로 알수있는데요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하나회 세력을 눈에 보이게 숙청을하게되면 분명히 군부에서 쿠테타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을텐데

별다른 잡음없이 정리를 할수있었던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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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영삼대통령은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첫 민간정부였고 미국이 군부독재정권을 더이상 허용하지않았기에 군부가 힘을 못 썼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하나회 출신 육군참모총장을 경질하는 등의 단호한 대처로 하나회를 숙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하나회가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전에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이 하나회 세력을 조용히 물갈이하려다 역으로 당한 전례를 고려하여 기습적인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통령에 오르자 마자 신속하게 하나회가 손쓸

    틈이 없도록 수장들을 비 하나회 출신들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중장급 이하들을

    보직교체 및 경질 시켜 버렸습니다. 그동안

    하나회에 의해 계속 진급이 누락되었던 비하나회

    및 비육사장교들은 이러한 조치에 적극적으로

    환영하였고 김영삼 대통령은 큰소요 없이 군권을

    온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하나회 숙청에 들어간 때는 취임 11일째 되는 날인 1993년 3월8일 이었다고 합니다. 이 순간까지 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 비서진 중 단 한 명도 김영삼의 의도를 몰랐다고 하며 김영삼은 철저히 비선 조직들과 일을 의논하다가 3월 6일 오후 늦은 시각 권영해 국방부 장관에게 "3월 8일 오전 7시 30분까지 청와대로 오라"고 지시했고 이 자리에서 바로 욱국 참모 총장과 기무 사령관을 교체 하는 등 하나회 핵심 인사들을 해고 해 버리면서 숙청 작업을 진행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