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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6

실제로 이순신 장군님께서 12척의 배로 일본군 300척의 배를 격파하신건가요?

최근에 영화 명량을 봤거든요. 진짜 감동적이고 멋있으셨는데 궁금한게 생겨서요. 영화에서 12척의 배로 일본군 300척의 배를 격파하셨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맞나요? 가능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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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명량해전은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무찔러 승리한 전투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승리는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물살을 이용한전략이었으며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무엇도 아닌 지형에 있는데 울돌목은 폭이 약 300 m 정도로 매우 좁아서 이순신의 십수척의 판옥선으로도 일자진을 펼치면 완전히 틀어막는 게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틀어막아서 병력 수의 불리함을 가능한 줄이고 들어오는 왜선을 오는 순서대로 파괴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지형적인 이점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진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면서 유리한 때를 기다린 이순신의 전략이었기때문에 가능한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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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777
    나무77723.02.26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량은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목.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이 크게 패하고 원균이 전사한 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이순신은 1597년 8월 어란포에서 왜선을 격파한 후 왜군과의 전면적인 일전을 준비했다. 전선(戰船) 및 병력의 부족으로 수군 본부를 진도군 고군면에 우수영으로 옮긴 조선수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왜군이 133척의 배로 공세를 취하자 조선수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수로에서 일자진(一字陣)을 치고 적의 수로 통과를 저지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로의 진영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조선군은 적장 구루시마(來島通總)의 목을 베어 사기를 높이며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30여 척의 배를 잃고 퇴각했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다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왜군은 수군을 이용해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싸움에서 이순신은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철그물을 수로에 쳐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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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왜군이 133척의 배로 공세를 취하자 조선수군은 불과 12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수로에서 일자진(一字陣)을 치고 적의 수로 통과를 저지했습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로의 진영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조선군은 적장 구루시마(來島通總)의 목을 베어 사기를 높이며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에 당황한 왜군은 30여 척의 배를 잃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다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왜군은 수군을 이용해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싸움에서 이순신은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철그물을 수로에 쳐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명량해전 [鳴梁海戰]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한국사사전편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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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 '명량'에서 보여주는 일본군 300척 대 12척의 조선해군 승리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릅니다. 일본군의 수는 매우 과장되었으며, 영화에서는 일부러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된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조선해군의 명량해전에서는 조선해군이 일본군을 격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조선해군의 승리를 예고하는 중요한 전투였으며, 일본군의 수비선을 뚫고 전진하여 일본군의 최정예 함대를 격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조선해군이 일본의 강대국에 맞서는 용기와 전쟁의 결정적인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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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12척의 배로 300척의 일본군 배를 격파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의 2차 왜란 때, 전략적으로 우수한 일본 함대를 물리치기 위해 거북선과 다른 전략적인 배를 사용하여 싸웠습니다. 특히, 1597년 10월 26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12척의 거북선은 일본군 330척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독립을 지켜냈으며, 전략적인 배치와 용감한 지도력으로 역사에 기록된 대한민국의 위대한 장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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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군선의 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12척의 배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순신 장군은 전술전략에 굉장히 능하고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주력은 판옥선이고 이 판옥선이 높고 커진 것에는 사실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그런 것이었습니다. 원거리에서 포사격을 하는 것이 조선 수군의 주공격 형태였는데 어디서 언제 어느 지형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원균같이 몰살하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처럼 적은 배로도 대승을 거두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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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선 시대는 전쟁시 과장이 좀 심해서 많은 과학자들은 12-30척 사이 적군의 배도 200-300척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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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네, 역사적 사실입니다. 명량해전이죠. 다만, 이게 일본 전함 300척을 다 격침 시켰다는 것이 아닌, 그 전투 자체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함도 중요하지만 그 전함을 통솔하는 지도자가 누군지(전쟁의 지도자가 누군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전투였습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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