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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흑로12
빼어난흑로1223.11.19

고려시대 천리장성이 몽골을 막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려시대에 천리장성이 몽골로 부터 침입을 막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만약에 원나라 간섭 시기에 천리장성을 재건할수 없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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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골제국은 당시 군사적 전략과 대규모의 군대를 보유했으나 고려는 상대적으로 작은 군사력이었고, 천리장성은 크고 긴 성벽은 맞으나 몽골 군대는 이를 꿇고 침입하거나 우회할수있는 전략을 이용합니다.

    또한 내부적인 정치 분열, 외교적 도움이 결여되어있었으므로 대응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원나라는 중국에서 힘을 얻은 외국 정권이었고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과 간섭을 받아 이 시기 고려는 정치적으로 약했고 자원 부족, 내부 분열로 재건은 힘들었을 듯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거란과 여진 등 북방 유목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변경에 쌓은 장성입니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길이가 1천리여서 천리장성 또는 고려장성이라고도 합니다. 여몽전쟁은 동서제국을 건설한 몽고군이 거란 잔당 소탕명분으로 시작하여 고려에 은혜를 베푼 것처럼 행동하며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고 하다가 사신 저고여의 죽음을 빌미로 고려를 침입하는데 천리장성은 큰 효과가 없었고 1차부터 9차에 걸쳐 1231년부터 1259년까지 30여년간 전투가 벌어져 몽고군의 피해도 심했으나 고려도 전 국토가 유린되고 몽고군에게 사로잡힌 남녀가 20만명이 넘었으며 고려는 2차 침입 때부터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대몽항쟁을 하다가 무신정권이 무너지자 개경환도를 결정하였으나 삼별초는 끝까지 대몽항쟁을 전개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의 침입 이후 개경에 나성과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리장성, 나성이 일시적으로 적을 막아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지속적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고려 조정도 1232년 강화 천도를 통해 육전에 약한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한 것이죠.

    그리고 1270년 개경 환도 이후 고려는 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남송, 금과 비교하여 다행이라 할 정도이고, 오히려 자비령 이북의 동녕부, 철령 이북의 쌍성총관부를 직접 원이 지배하고, 영토도 축소되면서 천리장성의 의미는 없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