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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4.27

칸트는 어떻게 철학의 상징이 됐나요?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등 다양한 비판 철학을 보여준 칸트는 철학자의 상징인데요. 실제로 칸트 이전과 이후의 철학이 큰 차이가 있을 정도라고 하던데, 어떻게 칸트가 철학의 상징이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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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7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서양 근대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와 존 로크로부터 이어지는 경험주의를 종합하였으며,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양 철학의 전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칸트가 남긴 저작 중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 유명하다.

    사망한 지 200년이 흐른 지금도 근현대 철학의 중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칸트의 영향력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근대 철학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대 철학에서도 칸트의 영향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칸트 윤리학은 현대 윤리학의 중요한 한 축 중 하나이다.

    -근대 철학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커서 세계 이곳저곳에 칸트 학회(Kant Society)가 있다. 국내에도 한국 칸트 학회가 있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세미나를 진행하고 학회지를 발행한다.

    -칸트 철학이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으로, 1868년 청나라로 파견되는 사신단을 수행하여 북경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지은 저술인 『연석산방미정문고(燕石山房未定文藁)』에 베이컨과 칸트의 사상을 논한 글이 부록으로 수록되었는데, 이 글이 수록된 별책의 원본이 현재 행방불명이다. 이 별책은 석정 이정직의 문중에서 보관하다가 서울대학교 최재희 교수의 요청으로 대출되었는데, 최재희 교수가 그만 이를 분실해버렸고, 미처 찾아내지 못한 채 작고하는 바람에 원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다만 영인본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철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면서도 근대미학의 틀까지 만든 사람인지라, 한국에서 유일하게 대중 인지도를 갖고있는 미학자이자 독일 유학파 출신 진중권이 대중적으로 의견을 낼 때 가장 근간을 두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순수이성비판이나 실천이성비판의 문장을 칼럼이나 언론 인터뷰에 인용한 적도 꽤 많으며, 방송 토론에서도 칸트의 윤리론을 언급하며 그 기준으로 토론 주제의 당사자들을 비판한 적도 있다. 칸트 사상의 최대 모티프는 보편성을 향한 욕망이라 할 수 있는데, 진중권은 사회적 토론 주제들을 대할 때 항상 보편성을 가장 중시하는 비평을 해 왔고, 기본적으로 자신이 칸트주의자[26]임을 공공연히 말해 왔다. 심지어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 모두까기 토론자 역할로 꽁트를 했을 때도 칸트의 정언명령을 언급했다.

    출처: 나무위키 이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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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칸트는 근대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철학 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수없을 정도로 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는데 이것이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습니다.

    실제 칸트 이전 세대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이 없었는데 이러한 구분은 칸트 이후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와서야 정립되었습니다.

    또, 근대적인 의미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도 칸트부터 시작되었는데 인간이 지켜야할 의무론적 윤리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 체계적인 인식론과 실천 이성구분을 통해 그 구조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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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칸트철학과 그 이전의 철학의 차이점은 자유(자율)이라는 원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칸트이전은 관습(타율)의 원리에 의해 성립되었지요

    예를 들면 조선시대 삼종지도가 있지요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노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지요 만약 이를 따르지 않으면 ??? 이 여자는 나쁜 사람이 되는 거지요. 관습(타율)이 지배하는 거지요

    지금도 아이들이 어른에 인사한다든가, 길건널 때 손들고 가기 드은 아이들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지요 사회의 관습이 그리 만든 것입니다

    그런 데 칸트는 개인이 자유롭게 의사결정하는 자유(자율)을 중시 했습니다

    자기의사가 100%가 되어야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우리 지하철에 노약자 지정석이 있지요 이 것은 사회가 노약자를 배려하여 만든 것입니다.

    따라소 누군가 앉았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면 이것은 100%자기의사가 아니겠지요

    또 노약자 지정석이 아닌 상황에서 자리를 양보했다면 이것은 자기의 자유로운 100%결정에 의하므로 칸트의 윤리적 선에 해당하지요

    또 자기의사결정의 자유가 70%밖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책임도 70%밖에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법정서도 이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요

    칸트의 저서인 영구평화론은 이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졌지요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관습(타율)에서 자유(자율) 균형이 이루어져야하고 자유(자율)이 클수록 건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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