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우리나라왕조에서도 잉첩있었나요?
중국역사에보면 언니가 결혼할 때 동생도 잉첩으로 같은 사람에게 혼인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왕조에서도 잉첩이 존재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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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후궁 이외에도 잉첩이라는 호칭이 기록은 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후궁 외에 숙의, 귀인, 궁녀, 궁빈, 잉첩 등 다양한 형태의 호칭들이 기록되있으며 이는 후궁이 잉첩으로 불리던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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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 왕후 귀족과 일반 권문세가에서 다처, 축첩 습속이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고려도경, 잡속조에 의하면 고려조정에 잉첩이 있고 관료에게 첩이 있으니, 이들은 서민의 처나 잡역에 종사하는 비와 비슷한 복식을 했다. 부잣집에서는 3~4인의 처를 취하였는데 이들은 자녀를 출산하면 별실에서 산다고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잉첩 등에 대한 규정이 있었고
등급 등도 있었은이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때는 세자비의 간택 때 뽑은 세자의 후궁을 잉첩이라 했습니다.
또한 고대에는 아내가 죽었을때 부득이하게 얻은 후처를 잉첩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