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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황조롱이
천연기념물 황조롱이23.01.12

설의 기원, 역사적 변천에 대해 궁금합니다.

설은 한해를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의 최대의 명절이잖아요. 이러한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어디에 수록되어 있나요? 그리고 변천사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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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중국의 역사서 수서, 구당서에 신라인들이 원일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설 명절이 역법체계에 따른다는것을 보면 이전부터 설이 존재했다 짐작합니다.

    3세기에 나온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제천의례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은정월, 5월, 10월의 농공시필기 등과 같은 표현이 있기 때문이며 은정월은 은나라의 역법을 지칭하는데 이는 음력섣달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의 설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아볼수있는데, 수서와 구당서에 신라 관련 기록에는 매년 정월 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에서도 설날은 상원, 상사, 한식, 단오, 추석, 중구, 팔관, 동지와 함께 9대 속절의 하나로 기록되어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식, 단오, 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였습니다.

    현재는 음력설과 양력설로 나뉘며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로 설날이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에 의한 설 입니다.

    1896년 1월1일에 태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으나 일제강점기가 되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을 압박하고 일본 명절인 천장절, 명치절 등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한국인을 행사에 참가시켰습니다.

    광복후 우리 스스로의 정부가 들어서지만 설에 대해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하였지만 국가가 아무리 신정을 강요해도 일반인들은 설날을 명절로 여기고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됩니다.

    오늘날 설날 무렵이면 추석과 함께 민족대이동이 주목되는데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많기 때문이며,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현상도 일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많습니다.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의미와 만남을 갖는 시간이 된다는 측면이 중요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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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생활과 산업사화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 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입니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 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 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 옷을 즐겨 입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 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 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2.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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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은 음력으로 1월 1일을 말하는것으로

    최초로는 중국에 7세기경에 중국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것이

    처음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유사에 설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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