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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기린210
넉넉한기린21023.11.26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단군과 고조선에 대해서 궁금한게 많아서 질문드립니다.고조선은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고 고조선의 사회는 어땠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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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군은 고조선의 제1대 왕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333년부터 기원전 1122년까지이며, 단군왕검·단웅천왕이라고도 합니다. 단군은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군은 직책으로 보이며 왕검, 왕험(王儉) 등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즉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장으로 제정일치의 고조선의 통치자를 이르는 명칭이 우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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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입니다.

    본래 국호는 조선이나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합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청동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현 중국 랴오닝성 및 북한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에 있던 고대 국가로 파악합니다.

    8조법이라는 법률이 정해져있었는데 이 법은 권력층의 사회질서 유지 수단이며 가부장 중심의 계급사회로서 사유재산을 중히 여겼고 응보주의에 따른 형법을 지녔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당시 고조선 사회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계급 분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8조의 법금 중 현재 전해지는 3개 조항에서 화폐 개념과 노비의 존재,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 조치를 볼수 있으며 이 시기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화려한 부장품들은 계급 분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그러나 촌락에선 공동체적 관게가 여전히 작용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회 계층은 귀족, 촌락의 일반민, 노비로 나뉘며 귀족은 노예와 토지, 재화 등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따로 가지면서 촌락 공동체를 대표하는 수장의 면모도 함께 가졌고, 노비는 상당수 존재했으나 많은 수의 노비를 사역하는 대규모 노예경영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제 경영이 발달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화폐 경제의 발달, 도시의 번창과 같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산 활동을 담당한 이들은 촌락의 일반민으로 이들은 당시 농업이 지닌 낮은 생산력과 가뭄이나 홍수 등에 따른 생산의 불안정성 및 철제 농기구의 부족 등으로 인해 소농단위의 자립성을 유지할수 없었으며 촌락 단위로 상호 의존하여 생산과 소비생활을 하는 공동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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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기록한 책들은 391회의 외침으로 소실죄어버렸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입니다. 그 이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에 중국의 사기나 일본의 서기를 참고하려 해도 자기나라 중심으로 쓰여있어 증명이 어렵습니다. 규원사화 등에 따르면 단군은 1대 단군부터 47대 단군이 존재했으며 단군의 단은 제사장 군은 왕으로 단군은 제정일치 사회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BC1000년 경의 유적만 출토된다고 하였지만 해방 후에는 BC2500년 경의 유적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BC2333년의 단군의 역사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닌 역사적 실체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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