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가져온 조선후기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조선시대 전반기에 비해서 후반기는 암울한데 임진왜란 이후 전개되는 조선 사회에서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비롯된 것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장 큰 변화가 바로 비변사 였는데 비변사는 원래 변경의 방비를 위한 기관이었으나, 임진왜란을 당하자 그 기능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전에는 군사 문제에만 관여했으나 이제는 국정의 전반을 다루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의정부는 유명 무실해졌으며 비변사가 국가의 모든 행정력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조선 전기의 군사 제도는 양인인 농민이 군역의 의무를 지는 병농 일치를 기반으로 하는 제도로, 궁궐의 수비와 수도의 방비를 담당하였던 중앙군은 중위. 전위. 후위. 좌위. 우위의 5위를 기간 보대로 하였지요. 군인을 고용하는 군대인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그 뒤 계속해서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수어청을 설립하여 5군영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지방에는 속오군을 창설하였다고 합니다.한편 여러 무기도 제작되었는데요. 임진왜란 전에는 농지 면적이 170만 결에 달했으나 전란이 끝나고 광해군 시대에는 1/3인 54만결로 줄어, 그만큼 농민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국가의 조세 수입도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내어 인구가 줄고 가옥과 재산의 손실도 막대하였구요. 이런 상태에서 인심이 흉흉하여 이몽학의 난과 같은 반란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군량을 모으기 위해 발행한 공명첩은 조선 왕조의 신분 제도를 붕괴 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유학은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많은 서적과 납치해 간 조선 유학자들에게 의하여 발달하였구요.본래 일본의 학문은 보잘 것 없었으나 조선의 유학이 전래되면서 차차 학문이 발달하여, 성리학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대표적인 학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성리학은 퇴계 이황이 학문 계통이 그 주류를 이루었는데 , 이처럼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학자와 기술자를 납치해 감으로써 문화가 급성장하여 에도 막부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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