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경은 서경(평양), 남경(경주)과 함께 고려 3경 중 하나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도 월등히 번성하고 높은 격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를 증명하듯 성종 때 정비된 5도 양계 행정구역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는데 개경은 주변 지역과 합쳐서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는 '경기'라는 별도의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경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여몽전쟁 시절 강화도로 파천을 갔을 때를 제외한 434년간 번성했다고 합니다. 개경의 인구가 10만 호, 그러니까 약 50만 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무리 개경이 북적거렸다고 해도 이는 주변의 행정구역을 포함하거나 과장이 가미된 숫자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과장을 배제하더라도 여러 기록을 절충해 보았을 때 개경이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번영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무리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 받고자 햿다고 하더라도 고려는 거란이나 여진 때문에 평양을 전략적으로 수도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