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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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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인생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적으로 큰 자산을 만드신 김정호의 인생은 어떗는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까지의 기간 및 역사적기록은 살던 당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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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정호는 고산자라고 스스로 호를 정하였으며, 여러 가지 재주가 많았는데, 특히 여지학에 깊이 빠져 여러 가지 문헌을 널리 수집하고 고찰하여 일찍이 지구도를 만들었고, 또 ‘대동 여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림도 잘 그리고 판각도 잘 하여 이를 간행, 세상에 널리 반포하였다. 이 지도는 상세하고 정밀하기가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지도보다 뛰어나다. 나도 이 지도 한 본을 얻었는데 진실로 보배로 삼을 수 있겠다. 그리고 <동국 여지고> 10권을 편찬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매우 아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김정호의 생애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부실해서 오늘날 현존하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김정호의 태생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잔반이나 중인 출신으로 추정된다. 김정호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보아 실학을 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호는 최한기와도 교류하였는데 최한기가 편찬한 세계 지도인 지구전후도를 목판에 새기는 작업을 맡았고 최한기는 김정호가 편찬한 청구도의 서문을 써주었다. 김정호를 후원한 인물로는 여도비지를 편찬한 최성환, 대동여방도 서문을 썼으며 김정호에게 지도 제작을 의뢰한 신헌[4] 등이 있었다.

    야사에 따르면 김정호가 어릴 적 산세를 살펴보려고 산을 헤매다가 선인을 만났는데 선인이 대뜸 "산에 함부로 들어와 뭐하는 거냐"하고 호통을 치자 처음에는 겁을 먹었다가 슬그머니 심통이 나서 "대장부가 하려는 일을 어찌 경솔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선인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김정호에게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는데 '고산자'였다고 한다.

    자신이 이전에 편찬한 지도인 청구도와 동여도, 이전의 각종 지도와 지리지를 참고해서 대동여지도를 편찬했다. 보통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호 자신이 전 국토를 유람하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김정호가 그러한 방법으로 지도를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정호가 한반도를 3번 돌고 백두산을 8번이나 오르며 정확하게 실측 하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설명은 '지도가 흥선대원군 때문에 사라졌다'고 당당히 사기를 쳤던 최남선의 글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최남선의 말이 퍼진 듯하다.

    객관적으로 김정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은 모두 김정호가 실측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3가지인데 청구도에 대한 서문인 최한기의 '청구도 제'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하였다", 신헌의 '대동방여도 서'에는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는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으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도 안에 담긴 정보는 너무나 상세하기 때문에 직접 그 정보를 전부 스스로 모아서 지도에 담을 수는 없다. 대동여지도 실물의 크기는 높이 7미터에 가로 3미터 반인 만큼 거대하며 여러 판으로 나뉘어 있고 여러 판들을 펼쳐 놓아야 비로소 거대한 지도가 완성되기 때문에 지도 전체를 전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직접 보고 싶으면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 구내 지도박물관을 방문해 보라. 대동여지도 전체를 박물관 바닥에 전시해 놓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시를 해 두어서 실용적인 목적을 꾀하였고 여러 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삽입하는 등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 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꼼꼼하게 알 수 있는 훌륭한 정보지이기도 하다. 10리는 직선 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 거리 10리이고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 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라는 지리지도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들에게는 대동여지도만이 알려져 있지만 김정호는 그 외에도 <청구도>, <수선전도>, <지구전후도>, <대동지지>, <동여편고> 등 수많은 지도를 제작하고 지리지를 편찬했다. 그야말로 지리덕후.

    출처: 나무위키 김정호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정호는 조선 지리학계의 위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대동여지도 작업을 시작한 것은 1861년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작업은 3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렸으며, 1863년에 완성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804년경 황해도 토산에서 태어났어요.

    1823년 동여도지를 편찬하기 시작했어요.

    1825년경 수선전도를 제작했어요.

    1834년경 동여도지와 청구도를 완성하고 최한기가 중국에서 가져온 지구도를 목판에새겼어요.

    1851년경 여도비지를 완성했어요.

    1856년경 동여도를 완성했어요.

    1857년경 지구전요에 세계각국도를 그렸어요.

    1861년경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고 대동여지도를 압축한 대동여지전도를 목판에 새겼어요.

    1866년경 대동지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관은 청도이며 자는 백원, 백온이고 호는 고산자 입니다.

    출생연도는 분명치 않고 태어난 곳은 황해도 봉산 또는 토산이라고 하며 평민 집안에서 태어나 지리학에 정진하여 일생을 정밀한 지도와 지리서를 만드는 일에 바쳤습니다.

    1834년 청구도 2첩 완성, 1857년 전국 채색 지도인 동여도, 1861년 대동여지도를 완성해 교간했습니다.

    또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그린 전도로 의의가 크며 김정호는 조선 후기 민간에서 활발하게 전사되었던 전국지도, 도별지도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제작한 군현지도를 결합하여 군현지도 수준의 상세함을 갖춘 대축척 전국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과학적 실측지도로 평가받고있습니다.

    또 지리지 편찬에도 힘써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 등을 펴냈으며 동여도지와 대동지지는 지역 단위로 지역의 특성을 기술하는 지역별 지지와 강역, 도로, 산천 등의 주제별 지리학을 결합시킨 지리지로 이전의 전국 지리지나 읍지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을 취합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11년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주축이 되어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반란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자 황해도 토사현의 현감은 조정의 명령을 받고 지원군을 보냅니다.이때 조선시대 관청의 하급 관리인 '아전'으로 봉직 중이던 김정호의 아버지가 지원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게 되고 한 겨울에 추위속에서 엉터리 지도를 따라 길을 나섰던 김정호의 아버지와 일행은 길을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그때의 아픔이 심장 깊숙하게 남아 있던 김정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얼굴도 못 알아 볼만큼 오랜 기간 전국을 떠돌면서 지도제작에 열중합니다. 잘못 만들어진 지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던 김종호는 백성을 도와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조각에 불가할 수 있지만 김정은은 지도가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나라에서 만든 지도보다 월등하게 정확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정호는 조선시대에 살았던 지도제작자이자 지리학자이고,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861년에 처음 간행된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는 산, 강, 섬 등 지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원근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김정호는 작품의 완성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후원할 후원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효진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널리 알려진 명성과 달리, 김정호에 대한 유의미한 역사적 자료와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그나마 대동여지도와, 야사에 근거하여 추론해볼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따르면 김정호는 몰락양반 또는 중인 정도의 신분이었으며.

    병조판서를 지내기도 한 지인 신헌을 통해 정부기관에 보관된 지리정보를 참고하여 대동여지도를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이상으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답변은 본인이 경험 또는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작성한 정보글로, 일부 착오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용범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대동여지도는 원고지 같은 눈금으로 한 눈금 당,10리를 표기한 축적을 표시한 지도이며,이것을 목판으로도 제작되었답니다.

    이 지도는 동양식 지도의 금자탑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그당시 쇄국정책을 주장했던 흥선대원군의 만행으로 나라의 정보를 넘긴다고,해서 감옥에 가둬 죽였다고하나,확실하지는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인이 지금 보아도 대동여지도는 정확하게 만들었다는데 놀랠수 밖에 없습니다.

    김정호는 꿈을 포기 하지 않는 집념이 대단하다고 후대에도 격하게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부실해서 오늘날 현존하는 자료는 많지 않으며 김정호의 태생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잔반이나 중인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김정호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보아 실학을 접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사에 따르면 김정호가 어릴 적 산세를 살펴보려고 산을 헤매다가 선인을 만났는데 선인이 대뜸 "산에 함부로 들어와 뭐하는 거냐"하고 호통을 치자 처음에는 겁을 먹었다가 슬그머니 심통이 나서 "대장부가 하려는 일을 어찌 경솔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선인이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김정호에게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는데 '고산자'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전에 편찬한 지도인 청구도와 동여도, 이전의 각종 지도와 지리지를 참고해서 대동여지도를 편찬했습니다.

    보통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호 자신이 전 국토를 유람하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김정호가 그러한 방법으로 지도를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김정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은 모두 김정호가 실측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3가지인데 청구도에 대한 서문인 최한기의 '청구도 제'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하였다", 신헌의 '대동방여도 서'에는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는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으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시를 해 두어서 실용적인 목적을 꾀하였고 여러 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삽입하는 등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 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꼼꼼하게 알 수 있는 훌륭한 정보지이기도 합니다.

    10리는 직선 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 거리 10리이고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라는 지리지도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정호는 지금의 대한민국인 조선시대(1392-1910)에 살았던 저명한 지도 제작자이자 지리학자였습니다. 그는 한국 지도 제작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대규모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호는 1730년 지금의 대한민국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조선 사회의 귀족계급인 양반계급이었으며, 김정호 자신은 지리학과 지도 제작법을 포함하는 유교와 한국의 전통 학문을 배웠습니다.

    김정호는 1760년대부터 지도제작자로 경력을 시작하여 평생 한국의 다양한 지도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완성되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 70대 초반이었습니다. 이 지도는 그가 한국 전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지도와 역사적 기록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22개의 개별 지도를 하나의 대규모 지도로 조합할 수 있는 대규모 작업이었습니다. 지도는 지리적 특징뿐만 아니라 사찰, 학교 및 기타 중요한 장소의 위치와 같은 역사적, 문화적 정보를 제공하는 매우 상세했습니다. 당시 한국 지도에서는 ​​이례적으로 색을 사용한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