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궁녀의 선발은 아주 엄격했습니다. 궁녀의 선발은 내명부의 소관이 원칙이었고, 국왕의 최종감독과 내명부 수뇌부의 지휘 하에 각 처소에서 궁녀선발을 담당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임금이 직접 선발하는 친선(親選)이 있어, 하루에 30명씩 이틀간 60명을 경복궁 사정전에서 직접 심사했다고 합니다.
궁녀를 고를 때 먼저 검토한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후보자의 가족 중 전과나 중환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했으며, 가족 중 기생이 있으면 궁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개인을 확인했는데, 종친부나 의정부의 공노비는 될 수 없었고, 관습법(慣習法)으로 성균관(成均館)의 공노비도 금지되었습니다. 관기(官妓)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서류심사를 통해 본인과 가족에게 문제가 없다 간주되면 상궁과 색장나인이 면접심사를 했고, 대화나 관찰 등등으로 됨됨이를 심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숫처녀인지도 꼭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