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 반대 입니다
국경은 커녕 자기네 마을에서 나가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이민은 커녕 여행도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럴듯한 마을이면 모두 경비병이 있어서 출입 통제를 받았구요
당연히 신분증같은건 없기 때문에 인맥이 있거나, 최소한 돈이라도 많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길은 100% 산길 흙길인데다가 경찰 비슷한 것도 없으니까
언제 어디서 산적이 튀어 나올지 알수가 없으니 돌아다니려면 사람과 무기를 많이 준비해야 했고
결정적으로, 대부분이 농노라는 노예계층 이었기 때문에
옆집으로 이사하는 것조차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윗사람 허락을 받아야 했죠
추가로 중세에는 중상주의라는게 유행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네는 물건 하나도 안사면서 남들은 내 물건 전부 사면 엄청 이득이다!"
라는 사상이죠.
물론 기본적 경제교육을 받는 현대인이 보면 이상한 논리지만 당시사람들은 이게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고
당시 귀족들은 "내물건"에 자기 영지의 사람들을 포함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옆 영지로 이사가는 것도 귀족에게 바칠 엄청난 돈과 화풀이를 막아줄 뒷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측량같은 지형을 측정하는 기술또한 없었기 때문에
영지 사이의 경계선에 살거나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에 숨어사는 화전민 같은 사람들은
소속된 영지가 쉽게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자가 바뀌는거라서
질문자 분이 상상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랑은 완전 다를 겁니다.
자유민 이라고 맘대로 돌아다닐수 있는 사람도 없진 않았지만
이런 자유민은 돈많은 상인이나 차별받는 유대인 같은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헌법같은 것도 없어서 영지 주인 맘대로 법이 정해지기 때문에
욕심많은 영주 한테 들키면 슬쩍 노예로 처리당할 수도 있어서
대부분 상인은 돈이 많아지면 한영지에 정착하기 마련이었고
유대인이나 집시는 자기들이 어디 정착 하고싶어도 못해서 떠돌아 다니는 거라서
국적을 맘대로 바꾸는게 아니라 국적 가지고 싶어도 못가지는 상태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