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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르름
푸르르름23.07.15

고려도 실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있었는데


고려도 사관이나 실록 같은것을 편찬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도 실록 편찬이 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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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왕조에서 남긴 고려실록은 고려 멸망후 조선시대에도 계속 춘추관에 보관되어있었지만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습니다.

    고려실록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려의 8대 왕이었던 현종이 2차 여요전쟁 당시 날려먹은 역대의 기록을 다시 쓰라고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매일매일의 왕에 대한 보고사항과 왕의 명령사항, 각 관청에서 취급한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으로, 기록의 자세함이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기록. 우리나라는 고려 때부터 시작되었다. 975년(고려 광종 26) 역사편찬기관인 사관(史館)이 생기면서 이때부터 시정(時正)의 기록과 실록을 편찬한 듯하다. 1034년(고려 덕종 3)에 태조에서 목종까지 7명의 왕에 대한 실록이 완성되었고, 이후 대대로 실록이 편찬되었다. 고려의 실록들은 <고려사> <고려사절요>가 편찬될 때 사용되었는데,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행적을 알 수 없고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조선도 고려의 예에 따라 왕이 즉위하면 앞선 왕의 실록을 편찬했다.

    사초(史草)라 하는 사관(史官)들의 기록을 기본자료로 하고 여러 관청의 기록을 참고로 하여 실록을 편찬했으며, 3벌을 인쇄해 춘추관과 지방의 외사고(外史庫)에 보관했다. 보관된 실록은 왕이라도 볼 수 없고 꼭 보아야 할 경우엔 관리를 보내 필요 부분만 베껴오게 함으로써 사관의 직필(直筆)을 보장했다. 조선시대 실록이 처음 편찬된 것은 태종 때(1410년)였는데, 이는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공정한 기록을 위해 늦게야 편찬한 것이다. 폐위된 왕들의 실록은 「일기」라 불렸고, <선조실록>부터는 당쟁과 예론의 영향으로 실록의 수정, 개수가 이루어져 부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실록은 고종 때 편찬된 <철종실록>이며, 고종·순종의 실록은 일본인이 주축이 되어 1935년에 완성되었는데, 명목만 실록이지 사진제판으로 인쇄된 것이어서 따로 구분하고 있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에 실록이 있었으며 조선실록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고려실록은 고려의 태조 왕건부터 공양왕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1413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1451년완성되었습니다.(총 138권)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왕조 대에 작성된 실록으로 현존하지 않습니다.

    정식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인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고려실록의 정식 명칭은 그냥 고려실록입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왕조 대에 작성된 실록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정식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인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고려실록의 정식 명칭은 그냥 고려실록이다.

    고려 왕조에서 남긴 이 실록은 고려 멸망 후 조선시대에도 계속 춘추관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 화재가 선조가 피난간 직후 한양의 난민들이 장례원에 소장된 공사 노비의 문적을 소각했는데 이 불이 바람을 타고 궁궐, 춘추관으로 번져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선조실록에는 해당 부분에 대한 기록이 없이 일본군이 불을 지른 것처럼 묘사하고 있고 선조수정실록은 간민과 난민이 궁궐에 불을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련 내용 다만 어차피 전란중이고 제대로 된 기록이 남기 힘들었을테니 방화의 정확한 주체는 파악하기 요원하다. 어쩌면 두 주체에 의한 화재가 모두 일어났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때 오히려 일본군을 환영해서 도운 순왜 조선인들도 일부 있었다. 아니면 방화가 아닌 실화(失火)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고려실록이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고려의 역사에 대한 국가적 기록은 이 고려실록을 바탕으로 김종서를 중심으로 편집한 고려사와 여기에 주석을 달아 요점만 뽑은 고려사절요밖에 없다. 고려도 실록을 남겼고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전범(典範)이 되었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고려사에 그 내용이 일부 전하기라도 하니 완전히 소실된 고대사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적은 편이다. 다만 고려사도 앞에 나열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료 한 글자 한 글자가 절실한 사정임을 고려하면 실전은 안타까운 일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