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

영주는 왜 선비의고장으로 불리는 건가요?

한국에서 선비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곳이 여러 곳있지망 가장 대표적인 곳이 영주인 것 같습니다. 어째서 영주는 선비의고장으로 불리는 것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선비촌 주변의 금성단과 소수서원, 소수박물관 등을 둘러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당시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던 곳이 바로 영주입니다.

      실제 영주는 뿌리 깊은 선비문화가 남아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이고

      죽령옛길은 물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만 보더라도 유교문화의 산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주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사적 제55호 소수서원(국보1, 보물5점 보유)과

      선비문화의 산교육장인 선비촌 및 선비문화수련원이 조성돼 있고,

      영주지역 선현으로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인 회헌 안향, 조선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관동별곡을 남긴 근재 안축,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한 천문학자 무송헌 김담 선생 등이 유명합니다

    • 영주시는 고려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고향이며,

      관학의 부진으로 조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에

      주세붕이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창건하여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한

      선비 교육의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난이 있을 때마다 목숨을 바친

      충절인과 순국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2018년 소수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영주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선비의 고장으로

      불릴만하다.

      -출처: 영주시민신문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주자학을 도입해 동방 성리학 비조(鼻祖, 처음 시작) 된 회헌 안향 선생과 백성 나라를 꿈꾼 민본사상가 삼봉 정도전 선생 고향이요, 주세붕 선생이 최초 서원이자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을 세워 국가적 인재양성에 힘썼던 곳이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이라 불린다고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지방에서 난 사람들 떄문 입니다.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해 성리학의 대명사가 된 안향 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의 고향이자, 주세붕 이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워 국가의 인재 양성에 힘썼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영주가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이곳 출신 인재들이 많은 고위관료나 문인으로 활약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중요한 직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서원이 많이 있는 지역에서 선비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서원은 지방의 재상들이 유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였으며, 이곳에서 유학생들은 주로 네자부(네문자 학습), 문집(시, 서적 읽기), 유학(서적 강독, 강의) 등을 수강하면서 선비 교육을 받았습니다.

      영주는 이러한 서원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영주 출신의 선비나 문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16세기 중반의 문학가 이규보, 18세기 초의 문인 김정희, 19세기 후반의 동학 지도자 유관순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선비적인 교양과 인재로서 조선의 문화와 정치,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주 출신 인재들의 활약으로 인해 영주는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주는 유교의 중심지였던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시대에 학문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교육과 지식 활동의 중심지로 많은 저명한 학자와 관리들이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선비촌은 조선시대 많은 유학자들이 살았던 역사를 가진곳이었고, 화엄사는 한국 지식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전반적으로 영주는 학문과 교육의 중심지로서 풍부한 역사, 중요한 기관, 문화 유산 및 문학 유산으로 인해 학자의 고향으로 불립니다.

    • 안녕하세요. 답변 드립니다.

      영주는 조선시대에 선비 문화가 발달하면서 선비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문인들의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시대에는 선비들의 교육과 문화적인 생활을 위한 시설들이 조성되면서 영주는 점점 더 발전해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영주에는 다양한 교육 시설들이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영주성종합학교, 영주서원 등이 있습니다. 이 학교들은 형식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선비 문화를 지키기 위한 가르침과 도덕적인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교육 시설들은 선비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심지로서 영주의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영주에는 다양한 문화 시설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주문화원은 고전 독서와 서예, 회화 등 선비 문화를 계승하고 전파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운영되는 문화 기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주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선비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영주에서는 선비 문화를 계승하고 전파하는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영주가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선비들의 많은 인재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영주는 조선시대 교육 중심지로 유교 교육의 중심지였으며, 다수의 성리학자와 시인, 문인 등을 배출하여 대표적인 선비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영주 출신의 인재들이 대부분의 지방 관직과 중앙 관직을 차지하면서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영주는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주시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과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고향이자 관학의 부진으로 저선의 교육이 위태롭던 시기 주세붕이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창건하여 조선의 수많은 인재와 지도자를 배출한 선비 교육의 요람으로 일컬어져왔고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국난의 상황마다 목숨을 바쳐 의를 실천한 충절인과 순국자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곳으로 예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