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를 경계하라던 이황은 왜 이리 재산을 많이 모았나요?
부귀를 경계하라던 이황은 당시 양반들이 평균재산이 300두락에 노비 100명이었던것에 비해 6000두락에 노비 300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본인소유의 노비와 양인간 결혼을 강요해서 노비의 수 증식을 했는데 부귀를 경계하라던 그는 왜 이리 재산증식에 몰두했나요?
안녕하세요. 안경국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황(李滉)은 조선 시대의 중요한 학자와 시인으로, "부귀를 경계하라"는 그의 유명한 격모(格言) 중 하나입니다. 이 격모의 주요 내용은 부를 쌓는 것보다는 도덕과 지식을 중시하고, 허영심과 탐욕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황이 부를 모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황은 실제로 재산을 모은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의 부를 통해 학문과 문화를 후원하고 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황은 문신(문과 합격자)으로서 정치적 경력을 쌓고 권력을 손에 넣었으며, 그 결과로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부를 교육과 문화 활동, 시 문학의 후원, 사회 개혁 등에 투자하여 조선의 학문과 문화 발전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부귀를 경계하라"라는 격모는 그의 부에 대한 자긍심보다는, 무분별한 탐욕과 허영심을 경계하고 도덕적인 삶과 학문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더 큰 가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황은 돈을 모으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로 남불이라고 할까요? 말그대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것 입니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 사대부들은 이재(利財)를 쌓는 것을 죄악시했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구분에서도 상인을 가장 아래에 노아서 부를 쌓고 이재를 중요시하면 인간의 본성을 잃고 도리를 어지럽힌다며 상공업의 발달을 억눌렀습니다.이황도 『성학십도』를 통해 세속의 이익에 대해 경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러야 부귀(富貴)가 마음을 음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貧賤)이 마음을 바꾸게 하지 못하여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세워진다." 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재산 증식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 결코 아닙니다. 자신들이 억누른 상공업에 투자하거나 이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 눈을 돌린 것은 노비(奴婢)와 전답(田畓)이었습니다. 이렇게 양반들은 노비와 전답을 대대 손손 후손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는 방식을 통해 잘 살게 금수저로 계속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이황도 휼륭한 학자임에는 분명 하지만 오늘날로 따지면 재산1000억대의 명문대 교수님과 같은 위치 였다고 보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황은 본인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부를 쌓았는데, 생전 자신이 늘 넉넉치 않다고 여겼고, 가뭄이나 흉년이 들 때 경제적 곤궁함을 토로한 적이 많았습니다. 중상층 이상의 재산을 소유했던 그는 이런 결핍 의식은 재산 증식의 당위성과 원동력을 제공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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