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흥신이 다대포 첨사로 부임한지 얼마 안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왜군은 부산진 함락 이후 첨사 윤흥신과 군사 800명이 지키는 다대진을 공격해왔다. 윤흥신 장군은 아우 윤흥제와 함께 적은 병력으로 분전하여 1만의 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첫 전투에서 대부분의 물자를 소비한 조선군은 다음날 다시 왜군의 재공격을 받아 모두 순국했고 윤흥신은 아우 윤흥제와 함께 성에 남아 끝까지 항거하다가 전사했다.
증직으로 증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가 뒤에 다시 증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1604년(선조 37년) 6월 25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추록되었다. 1736년(영조 12) 동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