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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단팥소보로
크림단팥소보로23.05.05

제주도는 언제부터 조랑말들이 살았나요?

제주도는 예로부터 말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옛말에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더군요. 제주의 대표말인 조랑말은 언제부터 제주도에 살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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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에서 말을 사육했다는 역사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13세기에 몽골이 제주도를 관할했던 충렬왕 2년(1276)부터 약 100년간 제주를 대규모 목마장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성산포의 수산평 지역에 몽골 말을 160여 마리 방목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몽골 종마(달단마)를 대량 도입하여 말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제주도는 남제주군과 북제주군으로 나눠져 있지만 13세기에 제주도는 동애막(東愛幕)과 서애막(西愛幕)으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이것을 우리나라 사학자들도 뜻을 풀이하지 못했다. 이때의 '애막(愛幕)'은 몽골어로 '아이막(ай маг)'인데 우리말로는 행정구역 '경기도'의 '도(道)'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몽골제국은 제주도를 동도와 서도로 나눠서 통치하며 유명한 목마장으로서 말을 다량으로 생산하였던 것이다.

    조랑말은 체구가 작은 말이다. 지금 조랑말의 체구는 숫말이 115㎝, 암말은 117㎝, 흉위는 숫말 137㎝, 암말 141㎝로 보고되어 있다. 조랑말의 털 색깔은 다양하여 20~30여 가지로 나타난다. 예로부터 조랑말의 털 색깔에 따라 말의 우수성을 구분하였다. 제일 우수한 말은 가라말(진흑색)이고, 청총(회백색), 월라(교모), 적다마, 백마의 순서대로 우수하다고 하였다.

    제주도에서는 말의 털 색깔에 따라 말의 이름이 불러지고 있다. 가라말(흑색마) · 총마(회색마) · 누륵총 · 청총 · 적다마(율모마) · 모시적다 · 구렁적다(타모) · 월라말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랑말과 얼룩말의 유래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아시아편), 2009. 9. 16., 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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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고시대에 들어온 조랑말이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서 잘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는 유럽과 아시아에 대한 거대한 정복전쟁을 하였는데, 이들의 주된 병사는 조랑말을 탄 기마병이었습니다. 기마병의 빠른 이동력과 강한 공격력은 순식간에 유라시아 대륙을 점령하게 해주었는데 고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고려의 대몽항쟁 과정을 보면, 수도개성을 빼앗기고 나서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가면서 몽고군에 대한 거센 반항을 하였는데, 이때 제주도에 많은 몽고기병이 배를타고 넘어오게 되면서 조랑말이 제주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섬이라는 외딴 환경으로 인해서 다른 종류의 말이 유입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혈통이 잘 보존되었고,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서 외부로 빠져나가지도 않게 되어 조랑말이 많이 번식하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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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원간섭기 제주도에서 몽골이나 서역의 대형마들을 풀어놓고 길렀으나 점차 토착 조랑말과 교잡이 진행되어 조선 초기에 이미 조랑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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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상으로는 1073년(문종 27)과 1258년(고종 45) 탐라에서 고려에 말을 예물로 바친 사실이 있다. 1273년(원종 14) 원나라가 탐라를 침공한 뒤 약 100년간은 수십만 두의 몽고말이 이곳에 유입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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