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프랑스의 잔다르크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잔다르크가 있는데요. 전쟁에서 영국이 유리한 고지를 밟았을때 프랑스에서 17살 소녀 잔다르크가 등장해서 전세를 역전시켰다고 하던데요. 그 어린 소녀가 어떤 역할을 해서 영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세기 전반에 영국의 백년전쟁 후기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인 소녀이다. 1429년의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나 샤를 황태자(뒷날의 샤를 7세)를 도왔다.
가톨릭의 성녀(聖女). 로렌과 샹파뉴 사이에 있는 동레미라퓌셀의 독실한 그리스도교 가정인 농가에서 태어났다. 1429년의 어느 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가서 루아르 강변의 시농성(城)에 있는 샤를 황태자(뒷날의 샤를 7세)를 방문하였다. 당시의 프랑스는 북반부를 영국군 및 영국에 협력하는 부르고뉴파(派) 군대가 점령하고 있었고, 프랑스의 왕위도 1420년의 트루아의 조약에 따라 샤를 6세 사후에는 영국왕 헨리 5세가, 또 그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 헨리 6세가 계승하도록 되어 있어, 황태자 샤를은 제외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잔 다르크는 샤를을 격려하고 그에게서 받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영국군의 포위 속에서 저항하고 있던 오를레앙 구원에 앞장서서 싸웠다. 영국군을 격파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데 이어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찔렀다. 흰 갑주에 흰 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만 보고도 영국군은 도망갔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그 해 5월 상순, 영국군은 오를레앙에서 완전히 패퇴하였다. 랭스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이곳 성당에서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샤를 7세의 대관식(戴冠式)을 거행토록 하였다.
이에 샤를 7세는 영국의 헨리 6세에 앞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잔 다르크에 대한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 속에서도 잔 다르크는 더욱 충성을 하였다.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을 당하였다. 뒤에 샤를 7세는 앞서의 유죄판결을 파기(1456),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시성(諡聖)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잔 다르크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잔 다르크(1412~1431)는 프랑스 북동부 마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열세 살이 되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프랑스 왕을 도우라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에 전쟁터로 나섭니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백년전쟁 중이었는데, 전투에서의 패배로 사기가 떨어져있었습니다.
이때 잔 다르크는 불과 17세의 여성으로서 전장에 출전하자마자 첫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프랑스군은 잔 다르크와 함께 연전연승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그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프랑스는 마침내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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