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을 천하통일하여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진시황제는 불로불사를 꿈꾸어 당시에도 사신을 보내 우리나라의 불노초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수많은 재물과 권력이 있다한들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시체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진시황은 병마용을 만들어 자신의 위치에 혼란을 주고 병마용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진시황릉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높이만 76m에 이를 정도이니 얼마나 웅장하고 거대하게 건축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원전 246-208년까지 38년간이 공사를 했으며 관이 안치되어 있는 매장실과 부속실은 아직까지도 발굴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 동쪽에 위치한 병마용은 1974년 3월 한 주민이 마을의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1, 2, 3 병마용은 발굴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으나 4, 5병마용은 아직 발굴을 못하고 있습니다. 1987년 진시왕릉과 병마용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