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의 공주의 남편, 즉 왕의 사위의 경우 지위가 어땠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는 왕을 중심으로 권력이 있던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공주의 경우 권력이 별로 없었을텐데, 그의 남편이나 왕의 사위의 경우 권력이 더 없었나요?
요약하자면, 조선시대 때 왕의 사위의 경우 그 지위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주의 남편은 부마도위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 종일품의 위(尉)를 주었다가 정일품으로 올려 주었으며,
옹주의 남편에게는 처음에 종이품의 위를 주었다가 정이품으로 올려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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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의 자리에 앉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서 왕과 왕비의 정치적 수단으로 배우자가 결정되는 단점이 있긴 하나 당시 시대 상황에서 공주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봤을 때 이러나저러나 괜찮은 자리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주와 결혼할 상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절대권력자인 왕의 사위니까 정말 괜찮은 자리가 아니었을까요?
먼저 의빈(儀賓)이 되는 방법은 간택입니다. 왕비를 간택하는 것처럼 의빈 후보자를 삼간택(三揀擇)이라고 하는 세 차례의 절차를 거쳐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간택 절차는 태종 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이전에는 신하들과 논의하거나 왕이 결정했습니다. (*의빈(儀賓)을 부마(駙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경국대전에 실린 조선 국왕 사위의 공식 명칭은 부마가 아닌 의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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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사위를 부마라 불렀습니다.
부마의 지위는 공주와 결혼한 사람은 정 1품, 옹주와 결혼한 사람은 정 2품으로 했습니다.
부마가 되면 제약이 있었는데, 관직에 나갈 수 없었고, 첩을 둘수 없었으며, 공주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도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재혼 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방에 출입하며 기생과 잠자리는 문제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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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사위를 부마라고 불렀습니다.
부마는 어느 정도의 생활과 지위가 보장됐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권력에서 배제됐고, 궁궐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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