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수박은 어떤 무술이었나요??
고려 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수박'이라는 무술이 언급되는데,
수박이라는 것은 어떤 무술이었나요?
지금 현재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손을 쓰되 상대를 잡거나 안아 쓰러뜨려서는 안되고 반드시 떨어진 상태에서 기술을 펴야 한다. 따라서 수박을 잘 하려면 손동작과 몸놀림이 재빨라야 합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박을 무술 훈련의 기본기로 삼았고 특히 조선시대에 군인을 뽑는 시험 과목으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시다
수박은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1960년 6월 대한수박도협회가 성립되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까지 보급에 힘쓰고 있다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박은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전래된 맨손 격투기의 명칭으로 보며 실제 국내 무술인들이 한국의 맨손 격투기의 원형으로 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박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맨손무예'를 뜻한다. 이는 손과 발 또는 머리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무예이다. 기록에 따르면, 수박(手搏), 수박(手拍), 수벽타(手癖打), 수벽치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수박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편찬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예의 이름이다. '수박'이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 사서인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수박육편』이라는 책에 보인다.
우리나라 기록에서는 수박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사』(1451)이다.
『고려사』권100 열전(列傳) 13 두경승(?~1197)조에, 두경승은 전주 만경현 사람이다. 성품이 온후하고 도타우며 꾸밈이 적고 용기와 힘이 있었다. 처음에는 공학군에 편입되었는데 수박하는 사람이 경승을 불러 한패로 삼으려 하였다. 그의 외숙 상장군 문유보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수박이란 천한 기예이니 장사가 할 바 못된다'라고 하니 경승이 드디어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고려사』권128 열전 451, 이의민(?~1196)조에, 이의민은 수박을 잘했으므로 의종이 그를 사랑하여 대정으로부터 별장으로 승진시켰다.
『조선왕조실록』의 수박관련 기사는 手搏, 手搏戱, 手拍 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모두 17차례가 인용되었다.
1410년 『태종실록』권19 태종 10년 1월 21일(술자)에, 병조와 의흥부에서 수박희로써 사람을 시험하여 방패군을 보충하는데, 세 사람을 이긴 사람을 뽑아 썼다.
그 외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 『용제총화』,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기록이 보인다.
수박은 고려시대에는 대단히 유행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수박은 『조선왕조실록』에는 1410년 태종부터 1467년 세조 13년까지 57년까지만 관련 기사가 나오고 그 밖의 자료에서도 1500년을 전후로 그 이후에는 수박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나영일, 1997).
1798년 『재물보』(이만영 편찬)에는 '슈벽' '탁견' '씨름'과 같은 맨손겨루기의 명칭이 보인다. 이는 조선의 군대 내에서 공식적으로 전수되던 맨손무예와는 다른 종류일 것이다. 군인들이 수련한 맨손무예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권법이었다.
출처 : 태권도 용어정보사전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박(手搏)은 도수박타(徒手搏打)의 줄임말로서, 손으로 치고 때리는 기술을 말한다. 상박(相搏), 백타(白打), 권박(拳搏), 권술(拳術) 등으로 불렸으며, 오늘날의 택견, 태권도, 가라테 등과 유사한 것들을 말합니다. 각저와 수박은 때로는 명확한 구분 없이 혼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탁견희(택견)와 함께 《해동죽지(海東竹枝)》 < 속악유희(俗樂遊戱) > 편에 나오는 수벽타(手癖打)는, 서로 마주 보고 손뼉을 치고(때리고) 노는 것으로 권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일 뿐이었습니다(정확히 어떻게 치고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하는 장난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손뼉치기(손때리기) 놀이를 수박(手搏)과 호칭이 비슷하다 하여 대단히 신비한 우리 민족만의(세상에 그런 정신 나간 민족은 또 없을 테니까) 비전 무예라고 팔고 다니는 것은 지극히 무지하거나 간특한 소치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수박이나 각저류는 무예라 하지 않을뿐더러 '권법'이라 부르기에도 충분치 않고, 고대 체육을 칭하는 일반명사로서 글자 그대로 수박 또는 각저일 뿐입니다. 후대에 와서 무예의 발전과 더불어 '법식을 갖춘 무예의 기본'으로서 체계를 갖추어서야 비로소 '권법'이라는 무예의 필요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선 먼저 '예(藝)'라는 글자를 살펴봐야 하는데, 고대는 물론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드라도 우리 조상들은 이 '예'자를 함부로 아무데나 붙이지 않았습니다. 서예와 무예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와서 활쏘기를 '사예(射藝)'라 부른 적은 있지만, 이 역시 무예에 속한 것이며, '십팔기'를 '십팔기예(十八技藝)'라 부르기도 하여 민간에서는 '십팔계'로 통하기도 했었습니다.
즉, 아무렇게나 붓으로 글씨를 쓴다고 서예가 될 수 없으며, 아무나 무기를 휘두른다 해서 무예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엄격하게 정형화 된 법식을 갖춘 기예여야만 비로소 이 '藝'를 붙여주었던 것입니다. 실록에서도 고려 중기를 지나서야 '무예'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그 전에는 대체로 그냥 '武'라고만 하였었습니다.
수박이나 각저는 고대의 병사들이 즐기던 체육이자 오락이었는데, 북한식 표현으로 '무술단련놀이'였던 것입니다.(오늘날에도 군부대에서 이와 유사한 군사체육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또한 궁중 연회에서 행해질 때에는 거의 잡기(雜技) 수준의 놀이였습니다. 굳이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고려나 조선의 왕조실록에는 왕들이 수박과 각저를 즐겼다는 기록이 많이 실려 있으며, 거의 대부분이 궁중 연회 중 오락으로 즐겼었습니다.
한결같이 그저 볼거리 행사였지 결코 무예로서 행해진 것이 아니며,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왕들은 군사나 장수들의 무예를 시험하는 행사를 자주 열었습니다.
그때는 수박이나 각저, 그리고 격구 등도 함께 행했지만 대개는 활쏘기나 창검술 등의 정식 무예였습니다. 그러면 궁중 연회에서는 왜 이런 무예 시연을 하지 않고 수박희나 각저희처럼 잡기들만 구경하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왕이나 외국 사신들의 면전에서 무기를 휘두르다니! 연회장은 고사하고 궁중 안으로 어느 누가 칼 한 자루 들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국기 십팔기에는 '권법(拳法)'이 정식 무예 종목으로 올라 있지만,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수박이나 각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병장 무예를 익히기 위한 법(法)과 식(式)을 갖추어 기예로서 정식 이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부터 해오던 수박이나 각저는 구체적인 동작의 기록이나 정형화된 법식이 전혀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때문에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그 내용이 똑같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였던 셈이다. 무예로서의 법식을 지닌 것이 아니라, 그저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과장되고 곡예화된 기술을 구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권법을 응용한 유희로서 일종의 고대 스포츠였다고 보면 됩니다.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면서 그 부록으로 군사 오락인 마상재(馬上才)와 격구(擊毬)를 실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수박이나 각저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만약 당시에 그것들을 무예로 취급하였거나, 아니면 최소한 군사 체육으로라도 인정하였거나 무슨 정형화된 법식이 남아 있었더라면, 2백 여 년 동안 그토록 우리 무예를 찾고 또 체계화하려고 애썼던 조정에서 그냥 두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에는 이에 대한 별도의 언급조차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수박희나 각저희를 행하였다는 기록은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역대 무예 행사나 군사(軍事)에 관한 기록을 정리해 놓은 〈병기총서(兵技總廻)〉편에서는 무예청 군사들이 각저 시합을 하였다는 단 한 번의 언급만이 있을 뿐이며, 또 〈권법(拳法)〉편의 '案'(지금의 참고 자료 또는 주석에 해당)에서 《한서(漢書)》에 나오는 "수박(手搏)은 손바닥으로 힘을 겨루는 것(팔씨름)으로 무희(武戱)가 된다"고 한 예를 실었을 뿐인데, 매우 정확한 언급입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무예와 놀이를 구분하지 못했을 만큼 무지했다고 생각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결국 권법의 최종적인 목적은 건신과 호신에만 있지 않고 무예, 즉 병장기를 다루기 위한 기초적인 신체 단련에 있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본인이 태권도나 택견 등 호신용 맨손 기술들을 분류상 무예에 속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그 운동을 하는 많은 분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무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고구려 무용총 벽화나 고대 문헌에 나오는 수박이나 각저라는 용어(법식을 갖춘 실제 기예가 아닌)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 말기, 조선 초기 실록에 등장해오던 수박이나 각저가 지금의 태권도나 택견의 모태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그리고 이 용어는 동양3국 모두가 사용했던 일반 명사입니다.
특히 임란 이후 정식 < 권법 > 이 군사훈련에 도입됨에 따라 더 이상 수박이나 각저가 필요 없어진 것이며, 궁중연회나 군사들이 익혔다고는 하나, 이미 조선 세종 이후에는 역사서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이로 미루어 이후 민간으로 흘러들어 민속놀이로 전해졌을 수도 있음은 유추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 전에 절로 완전히 멸실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굳이 군사체육용 수박이나 각저가 아니더라도 민간에서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고 없어지고 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실록에 나온 수박이나 각저가 조선실록에 나온 것과 반드시 동일한 것일 수도 없고, 군영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른 형태로 행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조 시대《재물보(財物譜》기희(技戱)편에 언급 된 택견에 대한 기록이 《해동죽지》유희(遊戱)편에 기록된 것과 똑같은 형태의 놀이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동시대라 해도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것이 민속놀이입니다. 그래서 태권도와 택견은 지금도 끊임없이 변질되고 있다.《무예제보》《무예신보》《무예도보통지》처럼 십팔기의 모든 기격 동작을 세명과 그림으로 설명한 교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택견이 궁중의 연희나 고대 군사체육인 수박이나 각저에서 나와 민간으로 흘러왔던, 아니면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흘러왔던, 분명한 사실은 놀이이지 결코 무예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름이 등장할 때부터 이미 민속놀이의 하나였고, 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택견은 항상 각법 혹은 각술의 놀이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발기술과 병장무기와는 애초부터 실오라기 한 올만큼의 연관도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무예로서의 권법과 호신술로서의 권법은 확실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면, 십팔기의 < 본국검 > 을 칼을 놓고 맨손으로 운용해도 훌륭한 권법이 나옵니다. 반대로 십팔기 < 권법 > 을 칼을 잡고 조금만 변화를 주면 훌륭한 검보 하나 만들어집니다.
비록 글로서는 설명하기가 복잡하여 제대로 무예를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힘들겠지만, 동작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초보자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역시 다른 병장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주먹다짐용 호신 권법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점도 무예와 무예 아닌 것의 차이점 중의 하나입니다.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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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수박은 한국의 옛 무술로,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전래된 맨손 격투기의 명칭입니다. 수박이나 수벽은 모두 손뼉을 가리키는 말로 추측되며, 그것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표기가 나온 것입니다.
수박은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수련을 하는 무술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수박이 크게 발달하여, 고려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의민도 수박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의민은 수박 기술로 당나라 장군을 물리치고 승리의 영웅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박은 조선 시대에도 전승되었으나, 19세기 말부터는 근대 무술의 영향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일부 무술 단체에서 수박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수박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박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로 손을 사용한 맨손 격투기
손뼉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
고려 시대에 크게 발달
조선 시대에도 전승되었으나 근대 무술의 영향으로 사라지기 시작
현재 일부 무술 단체에서 부활을 시도
수박은 한국의 전통 무술로서, 한국의 무술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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