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제국으로타국에 비해 고려를 부마국 등으로 배려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몽골의 징기스칸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제국으로 저항하는 타국은 무자비하게 압살하였다고 하는 데 비해 고려는 삼별초의 항전국이었음에도 부마국 등으로 배려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먼저 고려국은 몽골과 이전과 척을 진적이 없으며 반 유목국가인 고구려를 이은 고려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편이였습니다. 몽골이 자신을 괴롭힌 거란이나 송나라는 가차없이 학살했고 이것은 인종이 다른 유럽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무신 정권에 의해 몽골에 저항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태자가 스스로 항복하러 왔을 때 당태종도 이기지 못한 고려(고구려)가 스스로 항복을 청해왔다 하면서 당시 후계자 자리를 다투던 쿠빌라이는 크게 감격해 했습니다. 이에 고려 왕권에 힘을 실어주자 무신정권은 무너지게 되었죠. 이후로도 부마국으로 삼고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줍니다.
1231년 고려를 침공한 몽골은 수십년 동안 침략했지만 제대로 고려에게 항복을 얻어내지 못핬습니다. 그리고 남송과의 전쟁으로 고려를 제압하는데 집중할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몽골은 1259년 몽케칸이 사후 쿠빌리아와 동생 아라크부카와 제위를 놓고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259년 고려 태자(원종)가 직접 쿠빌라이를 찾아 항복을 하러 온 것입니다. 쿠빌라이 입장에서도 남송과 황제 쟁탈전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때 고려는 항복과 개경 환도를 조건으로 독립국의 지위(不改土風)를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운 좋게 쿠빌라이가 아라크부카와 황위 쟁탈전에서 승리하여 더욱 고려의 독립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세조구제(世祖舊制)"라 부릅니다. 이는 훗날 고려의 부원배들이 몽골의 한 지방으로 편입해 달라는 입성책동이 있을 때마다 고려는 세조구제를 들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