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마도 속주화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마도의 경상도 속주화문제는 조일간에 외교문제로 비화되었으며 조선정부와 실정막부간에 일시적 긴장상태를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대마도 정벌의 소식이 전해지자 막부에서는 조선과 명이 연합하여 일본을 침공한다는 유언이 나도는 등 긴장하였고, 조선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하였다. 대마도와의 사이에 전후처리 교섭이 진행되던 세종 원년(1419) 11월 막부장군 足利義持가 보낸 使僧 梁倪와 구주탐제의 사절이 조정에 도착하였다. 표면적으로는 大藏經을 요청하는 것이었지만 대마도 정벌의 진상과 조선의 정세를 탐지하려는 목적에서 파견된 사절이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막부가 요청한 7천 軸의 대장경을 回賜함과 동시에 宋希璟을 回禮使로 보냈다.
송희경은 막부장군에게 대마도 정벌이 왜구 금압을 위한 것이었을 뿐 일본 본토를 침략할 의도가 아니였음을 밝히고, 긴장의 핵심이었던 대마도의 경상도 예속문제도 세종이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원점으로 회귀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