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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안경곰147
빼어난안경곰14723.07.22

조선시대에 있던 서당이라는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 서당이라는 곳이 있었잖아요. 서당은 지금의 학원처럼 개인이 운영하던 곳이었나요? 그리고 서당을 내려면 나라에 승인을 받아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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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 초등 교육을 맡아 했던 사립 학교입니다. 사립학교의 개념이라면 운영주체가 개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의 초등학교와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았고,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둔 한문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 양반집 자녀들이 다녔다고 합니다.

    서당은 조선 시대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하는데, 보통 7~8세가 되면 입학해서 15~16세쯤 졸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쯤 되는 아이들도 서당에 다니곤 했습니다. 심지어 결혼을 한 어른들도 서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초등교육을 담당했던 사립학교라 할수 있습니다.

    서당에서 스승의 가르침은 지식뿐 아니라 생활 태도나 정신 자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종아리를 맞는 일도 허다 했습니다.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공립 학교는 향교였고요,

    개인이 세운 서당은 일정한 조건이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세워지고 또 없어졌다고 하네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당은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공립 학교인 향교나 사림들이 세운 서원처럼 일정한 조건이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세워지고 또 없어졌다.


    마을에서 선생님을 모셔와 서당을 차리는 경우도 있었고, 양반 유학자가 자기 집에 서당을 차려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상민들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해 수요가 늘었고, 몰락한 양반들도 많아져 이들이 생계를 위해 서당을 차리면서 서당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학부모들은 봄과 가을에 곡식을 거둬 서당의 선생님인 훈장에게 수업료로 냈다.


    서당을 다니는 학생의 인원이나 나이, 학문 수준도 서당마다 달랐다. 그러나 대체로 7~16세 정도의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


    공부 내용은 주로 《천자문》을 통해 한자의 음과 뜻을 익힌 후에 《명심보감》, 《격몽요결》 등을 통해 짧은 문장을 외우고 교훈적인 내용을 익히는 것이었다.


    한 권의 교재를 다 외우고 이해하면 훈장님께 감사하며 떡과 음식을 준비해 ‘책거리(책씻이)’를 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이후 《십팔사략》이나 《자치통감》 같은 역사책을 읽고, 《소학》을 통해 유학의 기본을 공부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으로 넘어갔다.

    출처 : 한국사 사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