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당은 나라에서 세운 지방의 공립 학교인 향교나 사림들이 세운 서원처럼 일정한 조건이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세워지고 또 없어졌다.
마을에서 선생님을 모셔와 서당을 차리는 경우도 있었고, 양반 유학자가 자기 집에 서당을 차려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상민들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해 수요가 늘었고, 몰락한 양반들도 많아져 이들이 생계를 위해 서당을 차리면서 서당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학부모들은 봄과 가을에 곡식을 거둬 서당의 선생님인 훈장에게 수업료로 냈다.
서당을 다니는 학생의 인원이나 나이, 학문 수준도 서당마다 달랐다. 그러나 대체로 7~16세 정도의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
공부 내용은 주로 《천자문》을 통해 한자의 음과 뜻을 익힌 후에 《명심보감》, 《격몽요결》 등을 통해 짧은 문장을 외우고 교훈적인 내용을 익히는 것이었다.
한 권의 교재를 다 외우고 이해하면 훈장님께 감사하며 떡과 음식을 준비해 ‘책거리(책씻이)’를 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이후 《십팔사략》이나 《자치통감》 같은 역사책을 읽고, 《소학》을 통해 유학의 기본을 공부한 후에 본격적으로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으로 넘어갔다.
출처 : 한국사 사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