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 신분이 박탈 당하는 일 또한 드물 었고 박탈 당한 신분을 다시 회복 하기도 어려 웠습니다. 애냐 하면 양반 신분을 박탈 당하는 경우중 대표적인 것이 반란 이나 역모를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는 최소 몇 백년 동안은 양반의 지위가 회복이 불가능 했기 때문 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삼문 인데 1441년 단종을 복위 하고자 역모 죄로 죽었으나 270년 후에 그는 1709년 경상도 의성(義城) 금학산(金鶴山) 아래에 지역의 유생들이 성삼문의 사우(祠宇)주12를 짓고 박팽년 등 5명의 신하들을 함께 향사(享祀)주13하였고 이를 숙종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번 역모죄를 지은 집안이 다시 양반이 되는 길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