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반도를 8도로 나눈 기준이 무엇인가요?
조선시대는 국토를 8도로 분할관리 했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 관용어 로 조선팔도란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조선시대 한반도를 8도로 나눈 기준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팔도(八道)는 조선시대 광역 행정 구역을 이르는 명칭이다. 1413년태종은 한반도를 여덟 개의 도로 분할하였는데, 팔도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체적으로 그 행정구역을 유지하였다. 고종33년 (1896년)에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팔도 중의 다섯 개의 도가 남·북도로 나뉘었고, 광복(1945년)까지 이 체계가 유지되었다.
‘팔도’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한반도의 여러 지방’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여러 지방의 아리랑이 ‘팔도 아리랑’으로도 불리고 여러 지방의 김치가 ‘팔도 김치’로도 불린다. 그러므로 ‘팔도’라는 말은 ‘한민족의 전통 문화’라는 의미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각 도의 이름은 그 도의 대표적인 도시의 이름의 첫 두 글자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충청’은 충주의 ‘충’과 청주의 ‘청’을 따서 만들었다. 경기도에만 예외적으로 ‘서울 주변’이라는 뜻인 ‘경기(京畿)’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의 표는 도청 소재지와 지방 이름에 대하여 고산자 김정호가 1857년에 제작한 동여도(東輿圖) 및 1896년의 행정구역 개편을 따라서 정리한 것이다.
이름이름의 유래지방방언수부(首部)
감영위치1896년의 지명강원도(江原道)강릉+ 원주관동영동: 영동 방언
영서: 경기 방언원주강원도경기도(京畿道)한자 의미 참조기전(畿甸)경기 방언서울(돈의문밖)경기도경상도(慶尙道)경주+ 상주영남동남 방언상주(1601년)
→ 대구경상남도경상북도전라도(全羅道)전주+ 나주호남전라 방언전주전라남도전라북도충청도(忠淸道)충주+ 청주호서충청 방언충주(1602년)
→ 공주충청남도충청북도평안도(平安道)평양+ 안주관서서북 방언평양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도(咸鏡道)함흥+ 경성관북함경도 방언함흥(1600년)
→ 영흥함경남도함경북도황해도(黃海道)황주+ 해주해서황해도 방언해주황해도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전국을 8개의 도로 나누고 행정구역마다 관리를 파견해 각 지역을 돌볼 수 있도록 했는데 각도의 명칭을 정할 때는 대부분 그 지역에서 중요한 도시의 이름을 따서 정하게 된 것 입니다.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등 중요 도시 위주로 8도를 나누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도는 조선시대에 정립됐지만 기틀은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지리적 접근성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나눴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개국 초에는 고려 말의 행정구역을 답습하여 경기·양광도(楊廣道:충청)·전라·경상·교주강원(交州江原)·서해(西海:황해) 및 서북면(西北面:평안)·동북면(東北面:함경)의 6도 2면을 두었다가 1398년(태조 7)까지 양광도를 충청, 교주강원도를 강원, 서해도를 풍해도(豊海道)로 고쳐 이들 행정구역을 일부 조정하여 6도 2면의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후 1413(태종 13)~16년에 풍해도를 황해, 서북면을 평안, 동북면을 함길도(咸吉道)로 고치고 함길도를 마지막으로 관찰사(觀察使)를 둠으로써 비로소 8도의 지방행정구역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 체제는 1896년(건양 1) 13도 체제로 개편되기까지 일부 구역의 변경 및 명칭의 개칭 등은 다소 있었으나 8도체제는 근 500년간 지방행정구역의 최상위 단위로서 존속되어 왔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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