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테무친은 몽골 부족의 우두머리로서 1206년 주변 부족을 통합하여 칸의 자리에 올랐으며 서요와 서하를 정복하고 만주와 중국 북쪽 금나라를 정복하고 중앙아시아까지 정복하였으며 당시 이 지역에 이슬람교를 믿는 호라즘이 있었는데 호라즘의 용병들은 칭기스칸의 용맹스런 기마부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1219년사마르칸트를 닷새만에 정복하였습니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기강이 엄하고 정복지의 귀족과 자신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에 칭기스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 뒤 페르시아와 남러시아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불과 20년 만에 유럽의 동쪽까지 정복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대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1223년 정복 전쟁을 계속하던 그는 병사들이 점점 지치고 날씨마저 더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3년 뒤 다시 서하 정벌에 나섰다가 병을 얻어 셋째아들 오고타이에게 칸의 자리를 물려주고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기스칸은 1227년에 사망한것으로 전해 집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전투 중에 부상을 입거나 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죽음은 몽골 제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그의 유산을 이어받아 제국을 이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은 후에 묻힌 무덤 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칭기스칸의 최후에 대해서는 전염병이나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거나 벼락 맞아 죽었다거나 말에 떨어져 죽었다거나 심지어 복상사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여러 설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낙마 사고로 인한 죽음이다. 1226년 7월, 서하 원정을 떠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때, 칭기즈 칸은 11월 아르보카에서 낙마 사고를 당했으며, 이후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사고를 당했을 당시의 칭기즈 칸은 이미 60세가 넘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낙마는 굉장히 치명적이었을 수밖에 없었다.《원조비사》에 따르면 이때 이후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