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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8.05

몽골이 2차 침입에서 살리타 사망후 철수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살리타가 몽골군을 이끌고 2차침입했을때 처인성에서 김윤후의 화살에 맞고서 고려에서 철수하게되는데 왜 살리타 사망후 철수하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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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몽골은 수장이 전사할 경우 철수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윤후에 의해 수장이었던 살리타가 사살되어 철수한 것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상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고종 19년(1232) 12월이었다. 몽고는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해 왔다. 그때 몽고군의 장수는 살리타이[撤體塔]였다. 이때 몽고는 고려를 두 번씩이나 침범해 왔는데, 살리타이는 송악을 점령하고 그 기세를 몰아 용인까지 점령해 왔다. 당시 처인성에서는 승병(僧兵)과 민병(民兵) 등 소수의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 살리타이 군대는 10만이 넘는 터라 이 작은 토성을 가볍게 보았다. 그러나 처인성 내에 있는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는 의병들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몽고군은 이 성을 함락시키려고 물밀 듯이 밀어붙였다. 그때였다. 처인성에서는 살리타이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살리타이의 눈을 향했고, 살리타이는 그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화살은 정통으로 눈을 관통했다. 살리타이는 갑자기 말에서 떨어지며 죽었다. 그러자 우리 군사들은 성문을 열고 나가서 혼란에 빠진 몽고군을 급습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으로 몽고군은 더이상 싸우지 못하고 본국으로 달아났다. 그 당시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사람은 승병장 김윤후(金允侯)였다. 김윤후는 아곡리 북편에 있던 절의 승려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살리타이가 김윤후의 화살을 맞고 쓰러져 죽은 곳을 그때부터 살장터, 또는 장군이 죽은 곳이라 하여 장사(將死)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김윤후(金允侯)는 생몰연대가 미상이다. 그는 백현원에서 수도하던 중이었다. 처인성에 몽고군이 밀려오자 김윤후는 불경 대신에 칼과 화살을 잡았다. 김윤후는 적이 쳐들어오자 화살을 날려 몽고 장수 살리타이를 죽여 성문에 그 목을 걸었다. 그 공으로 고려 고종은 김윤후에게 상장군을 내렸으나 사양했다. 그 뒤 충주산성 방호별감이 되었다. 몽고가 또 쳐들어왔다. 이때 김윤후는 관노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그들을 독려해서 싸움에서 또 이겼다. 고려 원종 때 추밀원 부사 등의 벼슬을 지내다가 물러났다. 몽고군은 군의를 상실하였고 더 이상의 전쟁은 의미가 없다하여 철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