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가 홀로 태릉에 묻힌이유는?
최대규모의 왕비 단릉인 태릉이 문정왕후의 능이라고 들었습니다.
혼자 이곳에 묻힌이유가무엇일까요?
남편인 중종옆에 같이 뭍힌것도 아니고요.
안녕하세요. 조영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문정왕후 윤씨는 조선시대 11대임금 중종의 왕후입니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첫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중종의 첫부인은 그의 첫사랑 단경왕후 신 씨 였습니다.
단경왕후는 연산군의 측근이었던 신수근과신수영이라는 형제의 동생으로 반정세력들의
반발로 폐위 되었습니다. 중종의 두번쨰 부인은 대윤이라고 불리던 윤임의 동생 장경왕후 윤씨였습니다
그녀가 바로 인종의 어머니이죠
장경왕후는 단경왕후에 대한 중종의 사랑 때뭉에 중종의 총애를 받지 못 했습니다.
문정왕후도 마찬가지이지요.
장경왕후는 원래 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에 인종을 낳으며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중종은 다시 단경왕후를 불러들이자고 제안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신들의 반발로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문정왕후가 왕후가 된 것은 장경왕후가 죽은 지 2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문정왕후는 소윤이라고 불리던 윤원형의 누나였습니다.
윤원형의 부인이 바로 정난정이지요.
문정왕후는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중종이 단경왕후를 잊지 못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어렸을 때 부터 질투가 심했던 위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닌 경빈 박씨랑 싸웠겠지요(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경빈이 미워서)...
그러닌 이 질투심한 위인이 자신이 귀하게 얻은 자식의 앞 길을 막는 인종을 좋아하지 않았겠지요..
게다사 장경왕후의 오빠인 윤임과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은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옆에서 정난정이 부채질 좀 야간 했겠지요..
인종은 문정왕후를 용서 했습니다.
대장금에서 문정왕후가 착하게 보였던 이유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위인이 바로 대장금이었기 때문이지요...하하
얼마나 문정왕후가 성격이 나빳으면 조선시대의 악녀라고 불리울 까요..^^:
문정왕후는 중종 몰래 바람도 폈다고 하네요..
많은 도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인종은 문정왕후에게 독살 되었다고 합니다.
명종이 왕위에 오른 뒤 지 아들도 때리고 괴롭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홀로 묻혔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종의 능은 장경왕후 무덤 옆인 예릉위치에 조성되었으나 당시 광주군 언주리의 선릉근처로 이장, 문정왕후 자신도의 자리도 그 옆으로 예비해뒀었습니다.
그러나 정릉 근처 지지대가 낮아 여름에 비가 오면 침수되어 현재 자리에 묻혔으며 침수가 잦자 다시 묏자리를 옮기려 하나 거듭해서 묏자리를 옮기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상소가 많아 중단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풍수지리상 무후지지라고 하며 후손이 끊기는 자지이며 당시 이 자리가 무후지지라는 소문이 많았고, 조선왕조실록에의하면 명종은 윤원형과 총호사 심통원에게 대방동과 경기도 장단군 2곳을 두고 의견을 물었는데 윤원형이 술관의 이야기를 듣고 대방동에 묻힌 사람의 후손을 비교한 결과 풍수지리설은 신빙성이 없다하고 대방동이 묏자리고 전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