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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4.12

김홍도 화가는 어떤 계기로 백성의 삶을 그리게 됐나요?

조선시대 김홍도 화가는 어릴 때부터 인정 받아, 궁중화가가 됐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풍속화를 그리게 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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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홍도는 몰락한 양반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합니다

    11살때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던지 탱화를 그린것은 영조와 정조의 명이었을 뿐 찢어지게 가난했는데도 김홍도는 상당히 신선같은 삶을 원했습니다.

    그랬기에 김홍도는 서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과 신선과도 같은 그림을 좋아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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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조선후기 민중들의 의식주와 생업현장을 포함한 기본적인 생활상과 직업, 종교, 교육, 여성, 놀이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정조 임금이 김홍도에게 백성들의 삶을 밀착해서 그리도록 지시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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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는 궁중 도화서화원이 되어 궁중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1791년 정조의 어진 원유관본을 그린 공으로 충청 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습니다.

    현감에서 해임된 50세 이후 김홍도의 작품 세계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실경을 소재로 진경산수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 불리는 독창적 화풍을 이룩합니다.

    현감에서 시기와 질투로 해임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뜨면서 그린 것이 풍속도라고 보여집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그림을 그린 계기가 자신의 삶을 회고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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