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와 에디슨은 어떤 관계였나요?
전기왕으로 불리는 테슬라와 발명왕 에디슨은 동시대 인물이었고, 전기와 관련한 사업을 한 위인들이잖아교요. 두 사람은 어떤 관계를 맺었었고, 둘 사이 흥미로운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테슬라와 에디슨은 동시대의 발명가였지만, 서로 다른 기술적 접근 방식과 경쟁 관계로 인해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실용적인 발명품 개발에 집중하는 사업가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는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며 성공적인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테슬라는 순수한 과학적 탐구와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과학자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테슬라와 에디슨은 전기 기술 분야에서 경쟁자였습니다. 테슬라는 교류 발전기를 발명하여 전기 공급을 개선하고자 했으며, 반면에 에디슨은 직류 발전기를 사용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술을 비판하고 경쟁하면서 전기 기술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0년 미국 뉴욕에서 니콜라 테슬라를 필두로 한 웨스팅하우스와 토머스에디슨 사이에 전기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전류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주 내용은 직류와 교류 중 어떤 것을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느냐 인데 에디슨은 직류, 테슬라는 교류를 써야 한다 주장했습니다.
이 둘의 인연은 테슬라가 에디슨의 유럽자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시작되는데, 테슬라의 실력이 본사에 알려지게 되면서 1884년 에디슨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뽑히게 되는데 테슬라는 교류를 이용하면 직류 전동기의 스파크 문제를 해결할수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부다페스트 전신국에서 근무하면서 실행에 옮겼는데 변화하는 자기장의 원리를 이용해 교류 유도 모터를 발명, 에디슨 전화회사로 옮겼을 때 모터를 제작해보게 되었고 미국 에디슨 연구소로 온 뒤 에디슨에게 교류 전기를 제안합니다.
에디슨은 교류전기 제안을 거절하고 후에 자신의 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 갖은 수를 쓰기도 했는데 직류전기가 일반인이 쓰기에 비싸 전기의 대중화가 어렵다는 것이 테슬라의 주장이었습니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회사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교류 시스템에 필요한 발전기, 모터, 변압기를 모두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테슬라코일 이라는 세계 최초의 교류전기 모터의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웨스팅하우스의 투자로 발전하고 이를 계기로 직류 시스템을 고집한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이 불붙게 됩니다.
이 무렵 에디슨은 백열전구, 전선, 전기모터, 발전기 등 직류를 이용한 전기 시스테멩 사용되는 모든 것을 개발해 전기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기차에 사용되는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된 후 테슬라에게 교류 변압기의 특허를 사들여 전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에게 현금으로 5000달러를 줬고 회사 주식 50주에 교류전기를 팔때마다 생기는 로열티는 지불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데 자신의 분야에서 2등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던 에디슨은 시장 선점을 뺏기지 않으려 합니다.
에디슨은 교류에 흠집내기 캠페인을 벌이며 반격하는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교류 대신 직류를 사용할수없음을 피력하는데 과학자들이 심판으로 나서게 되었고 시카고 전기클럽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직류와 교류를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토론까지 열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에디슨에게 매수된 상태이므로 직류사용범위가 넓고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직류를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아야한다고 결론지으나 프랑스 기업이 구리 시장을 장악하면서 구리 가격이 3배나 뛰게 되는데 직류 방식은 전기를 굵은 구리선에 보내야 하는 반면 교류 방식에서는 구리선이 가늘어도 되어 점점 교류를 사용할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바뀌게 됩니다.
궁지에 몰린 에디슨은 교류를 폐기시킬 방법이 필요했고, 위험성을 강조해 대중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1887년 사형집행 방법인 교수형의 대안을 찾는 뉴욕 주 사법당국에 교류가 흐르는 전기의자를 제안했으나 전류를 흐르는 방식이 미흡해 사형수가 바로 죽지 않게 되었고 교류가 흐르는 전기의자에서 치명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그의 노력은 헛수고가 됩니다.
전류전쟁에서 에디슨은 직류의 단점을 시인할수 밖에 없었는데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에서 켤 전구가 25만개나 되었는데 에디슨과 테슬라측은 서로 이 사업을 따려 노력했고 테슬라는 고주파 교류 전력이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실험을 진행해 교류 전기의 안정성을 입증하게 됩니다.
결국 이 사업은 테슬라가 따냈고 웨스팅 하우스는 테슬라가 특허권을 무상으로 양도하면서 자금난이 해소되어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일로 에디슨 진영은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고 에디슨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JP모건은행은 에디슨 전기회사를 다른 회사와 합병해 대형 전기회사로 만들게 됩니다. (제너럴일렉트릭)
제너럴일렉트릭 주식 5%를 얻은 에디슨은 이때부터 전기사업에서 멀어졌고 미국의 전력사업은 테슬라와 에디슨의 손을 벗어나 웨스팅하우스와 제너럴일렉트릭 간의 경쟁으로 커지게 됩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은 나이애가라 대결로 끝이나는데, 당시 캐터랙트라는 기업이 나이애가라 폭포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 발전소를 설치, 약 42km떨어진 버팔로 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송전사업자를 물색했고 여기서 에디슨의 제너럴일렉트릭과 테슬라의 웨스팅 하우스가 대결하나 웨스팅하우스가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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