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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아리따운안경곰7023.08.30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감금했나요?

영화로도 유명한 역사의 일부인데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감금하고

사망할 때까지 그냥 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매몰차게 버린 것일까요?

자신의 핏줄을 그런식으로 대한다는 것은

어떤 한가지 이유이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영조가 사도세자를 버린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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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때 집권세력은 노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도세자는 정치적 입장에서 소론의 편을 들었습니다. 이에 노론쪽에서 사도세자를 경계하기 시작하죠. 영조의 입장은 난처합니다. 사도세자와 잦은 다툼이 있엇다고 여러가지 기록에서 전합니다


    당시 노론은 영조의 집권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또한 영조는 '경종독살설'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폐서인'된 세자는 어린 세손(정조)를 생각해도 짐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처음에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자살'이라는 다소 편한 죽음을 선사하려 합니다. 사도세자가 거부하여 뒤주에 가두어 굶겨죽이게 됩니다.

    아들을 죽인 뒤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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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사실상 정치적인 색체가 강하며, 당시 노론 벽파인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구선복 등의 권세가 막강하여 영조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자가 자기가 원하는 후계자 상이 아니었는데 반해 그의 아들인 세손 산(후의 정조)는 영조가 아주 마음에 들어했으므로 사실상 세손의 즉위를 위해 세자가 제거된 것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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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린 사도세자는 마음의 병인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도세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조: 왜 동물을 죽였느냐?
    사도세자: 소자는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조: 어째서 상처를 받았느냐?
    사도세자: 아바마마께서 사랑해주시지 않아서이옵고, 또, 아바마마께서 늘 저를 꾸짖으시니 소자는 아바마마가 무섭사옵니다.

    뒤주에 갇혀 있다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서에는 사도세자의 악행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관을 죽이고 그 머리를 자신의 부인에게 가져다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영조의 침방나인이었던 박 씨를 건드려 임신시킨 적도 있습니다(아버지의 여자를 건드린 셈이죠). 또 후궁을 살해한 일도 있고, 가선이라는 여성을 겁탈하고 궁중에 몰래 들인 일도 있었습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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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가 사도세자를 버린 근본적 이유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도세자의 정신 이상적인 행동이 영조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도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동안 잦은 폭력과 살인, 그리고 기행 등으로 영조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사도세자를 버렸습니다.

    둘째, 영조의 자존심과 권위주의가 사도세자를 버리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을 자신의 부덕함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사도세자의 정신 이상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여, 사도세자를 버림으로써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또한, 영조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도세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영조의 정치적 계산이 사도세자를 버리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버림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후손들의 왕위 계승을 안정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영조는 사도세자를 버리고 뒤주에 가두어 죽게 했습니다. 이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조선왕조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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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에게는 모두 6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복이 없어서 영조의 나이 42살에야 아들을 얻어요(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병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늘그막에 얻은 너무나도 귀한 아들이라 영조는 이듬해 그 아이를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그가 바로 사도세자죠.


    하지만 그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아버지인 왕 영조의 명령에 의해서 굶어죽게 돼요.


    심지어 쌀 항아리인 뒤주에 갇혀 죽게 되죠. 뒤주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작아보이죠? 겨우 성인 남성 한 명이 무릎을 구부리고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입니다.


    사도세자는 이 뒤주에 8일 동안 갇혀 있다 아사했습니다. 왕족인데 굶어죽다니 엄청난 비극이죠.

    도대체 사도세자는 뭘 잘못했기에 이런 처벌까지 받았을까요? 역사서에는 사도세자의 악행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관을 죽이고 그 머리를 자신의 부인에게 가져다준 일도 있었고요. (허걱) 영조의 침방나인이었던 박 씨를 건드려 임신시킨 적도 있습니다(아버지의 여자를 건드린 셈이죠).


    또 후궁을 살해한 일도 있고, 가선이라는 여성을 겁탈하고 궁중에 몰래 들인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된 짓을 많이 하긴 했네요.

    사도세자는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기록으로만 보면 약간의 정신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대로 치면 정신분열증과 증세가 유사하다고 해요. 원인은 바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애정결핍이었습니다.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행정 업무를 이양받아서 처리한 때가 겨우 15세였어요. 너무 어릴 때부터 정치권의 다툼 속에 빠져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거죠.


    근데 사람이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누군가가 인정해주면 또 마음이 풀리잖아요. 사도세자가 누구에게 가장 인정을 받고 싶었을까요? 당연히 아버지인 영조겠죠.


    아버지가 “너 잘하고 있어!”라고 한 마디만 해줬으면 괜찮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영조는 매정한 아버지였어요. 항상 아들을 못마땅해 하고,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이 보이죠?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지은 죄가 있으니 자진하라고 명하지만 세자가 따르지 않자 그를 폐위하고 뒤주에 집어넣습니다.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면 더 끔찍해요. 뒤주에는 방음 장치가 없죠. 그러니 사도세자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면서 뒤주 벽을 두들기고, 긁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계속 났을 겁니다.


    대소변도 그 안에서 봐야 하니까 악취도 났을 거고요. 실제 이런 상황에서는 4~5일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 감금 후 5일 만에 세자는 사망했을 것이고, 나머지 3~4일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겠죠.


    당시에 궁궐 사람들의 공포는 어마어마했어요. 그중에서도 이 상황이 가장 괴로웠던 사람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였죠. 당시 정조는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이다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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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수리 출신 후궁 소생인 자신의 출신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상 유일한 후계자였던 아들 사도세자의 교육에 열중한 나머지 사도세자를 학대하고, 이러한 학대를 견디지 못한 사도세자는 끝내 미처버려 여러 범죄행각을 벌이게 됩니다.

    이 범죄행각을 들은 영조는 분노하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포기, 후계자로서 모자람이 없는 손자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하며 이에 방해만 되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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