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남해왕은 왜 차차웅이라는 호칭을 썼나요?
신라는 역사적으로 왕의 호칭도 자주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라의 2대 남해왕은 차차웅이라는 호칭을 썼다고 하는데 차차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호칭인가요?
그리고 신라의 왕들 중
차차웅을 쓴 왕은 2대 남해왕 뿐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족장 수준에서 고대국가의 왕으로 왕권이 강해져 가는 것을 반영하는 정도에 따라서 호칭이 바뀝니다. 차차웅은 김대문(화랑세기 저자)에 따르면 무당을 이르는 방언이라고 합니다. 차차웅 호칭은 2대왕 뿐입니다.
1,2,3대는 호칭이 거서간/차차충/이사금 으로 전부 다르며 거서간은 진귀한 이를 뜻하는 호칭이라 하고, 차차웅은 무당을, 이사금은 이빨 개수가 많은 사람을 말하는데요.
한 나라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호칭이 이렇게 자주 바뀐 데에 대한 공식적 정설은 아직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1대 박혁거세는 거서간 2대 남해왕은 차차웅 3대-16대까지는 이사금 17대-21대까지는 마립간 22대 지증왕부터 왕의 호칭을 사용하였습니다. 2대 남해왕만 차차웅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차차웅이란 각찬 또는 각간이란 의미로 제사장 즉 무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라 초기에 샤머니즘이 아주 강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왕의 칭호로 사용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져 내려옵니다. 남해 차차웅은 남해 거서간으로 불렸으며 차차웅은 가가웅 카카웅으로 불리웠으며 각간을 각찬으로 제사장을 겸한 임금의 호칭입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차차웅은 '무당', '예언자'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어이며, 차차웅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왕은 2대 남해왕만 유일하게 존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칭호에 대하여는 국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남해거서간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존장의 칭호로서 오직 이 임금에게만 칭한 것이다" 라고 전합니다. "차차웅"이라는 왕호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김대문을 인용하여, "차차웅 혹은 자충은 무당을 이른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차차웅 이란 호칭은 남해왕에게만 쓴 호칭이며
이것은 존장의 칭호로서 차차웅운 방언으로 무당이며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모셨으므로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차차웅은 신라 박혁거세의 맏아들로, 차차웅이라는 칭호는 남해왕 1대에만 사용한 무당을 뜻하는 말로 제정일치시대의 원시사회적 수장이름의 특색을 나타냅니다.
무당은 불교나 유교가 들어온 뒤 미신으로 분류되어 천시되었지만 부족국가를 이룰 당시 부족을 이끄는 권력의 상징으로 부족장만이 신과 대화할수있는 신성한 위치에 있었으며 학교도 없고 무엇이든 신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였으므로 신의 계시나 가르침은 부족장이 중간 역할을 했고, 부족의 교화와 계도 및 부족을 이끄는 리더이므로 그를 스승이라 불렀던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신라 2대왕 기록은 버금차+버금차+수컷웅으로 글자가 없전 시절 한자의 음만 빌려쓴 경우 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왕의 칭호는 여러 차례 바뀝니다.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으로 순서대로 변천했습니다. 거서간은 큰 간이라는 뜻으로 대족장이란 의미입니다. 청동기 시대 지배 피지배 계급이 생긴 후 족장이란 지배자가 탄생하였습니다. 차차웅은 아주 독특한데요, 제사장을 뜻합니다. 그러니 제사와 정치가 일치된 형태로 보입니다.
그 다음은 이사금인데 이것도 독특한데 큰이빨이란 뜻입니다. 진골과 성골이 진짜뼈와 성스러운 뼈이니 유추가 가능하지요. 마립간은 족장 중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대족장으로 볼 수 있고 지증왕 대에서야 중국식의 왕이란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신라가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중국과 직접 교류가 어려웠고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려 토속적 색채가 강한 문화였다는 점을 감안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