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70년 고려 중기에 일어난 무신의 난은 당시의 정치혼란과 함께 신분계급에 큰 변동을 일으켜 하극상의 풍조가 팽배, 중앙정부는 정치투쟁과 권력다툼으로 관리 기능이 약화되었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하고 하층민에 대한 과중한 세금과 착취가 심화됩니다.
결국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며 농민과 노비에 의한 반란까지 유발시키는데 그 중 가장 대규모적이고 목적이 뚜렷한 것이 만적의 난 입니다.
만적은 당시 집권자인 최충헌의 사노로서 6명의 노예와 함께 개경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 공사의 노비들을 모아놓고 난을 일으킬 의논을 합니다. 그는 '정중부의 난 이래 나라의 공경대부는 노예계급에서도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수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의 고통만을 당할 수는 없다. 최충헌을 비롯해 각기 자기 상전을 죽이고 노비의 문적을 불질러, 우리나라로 하여금 노비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수있다. '는 뜻의 선동연설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