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철종 이원범은 사도세자의 몇 안 남은 직계 후손이었다. 사도세자는 적자인 정조 말고도 서자가 몇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은언군으로 이원범의 할아버지다. 은언군은 여러 명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중 서6남이 이원범의 아버지 전계군 이광이다.
정조 재위기인 1786년(정조 10년), 이원범의 할아버지 은언군은 권신 홍국영과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아 철종의 친부인 이광을 비롯해 식구들이 강화 교동도로 유배를 갔다. 거기서 은언군은 순조 때 신유박해 등을 이유로 사사당하지만 이광은 살아남아 교동도에서 무려 40년 넘게 살다가 순조 30년인 1830년에 귀양에서 풀려나 한성부로 돌아온다. 그리고 1831년(순조 31년) 3남 이원범이 태어난다. 결국 철종은 사도세자의 후궁의 아들인 은언군의 첩(전산군부인 이씨)의 아들인 전계군의 서자인 것이다.
상계군 사건 이후 역적 취급을 받는 은언군을 조상으로 둔 탓에 봉군되지도 못했으나 즉위 전날 순조의 아들로 입적이 되면서 덕완군으로 봉해졌다. 이는 즉위 이전에 예법상 평민에서 바로 왕이 될 수 없으므로 봉군(封君)해서 사대부를 만든 연후 즉위한 것이다. 절차상의 문제이고 고종도 동일한 절차를 거쳤다. 아버지나 큰형은 아예 자기가 왕이 된 후 추봉하였다.
그래도 이원범은 어린 시절에는 그의 형들과 함께 몰락한 종친 신분일지언정 조선 왕가의 몇 안되는 남자 왕족으로 대우 받으며 그럭저럭 살았다. 두 형들과 달리 아버지 이광이 귀양에서 풀린 뒤, 조선 한성부 향교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10살 때 죽은 일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14살 때인 1844년(헌종 10년)에 민진용(閔晉鏞)이 큰형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계획하면서 다시 기구한 운명이 된다. 이명은 처형되고 이원범은 연좌제로 작은형 이경응과 같이 교동도로 유배되었으며 얼마 못가 강화도에 다시 유배되었다.
이후 작은형과 함께 19살 때까지 강화도에서 5년간 농사를 짓고 나무나 베던 이원범은 왕족이 아닌 일개 평범한 백성으로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