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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5.04

조선시대 농사를 짓던 철종을 왕으로 세운 이유는 뭔가요?

조선의 왕 중 한명인 철종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왕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에도 여러 이씨들이 있었을텐데 굳이 농사를 짓던 철종을 왕으로 세운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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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철종 즉위 전 왕이었던 헌종이 후사에 자식이 없이 나이 23세라는 어린나이에 죽게 된 이후 유배지에서 평민처럼 농사짓고 살던 철종이 순원왕후의 명으로 궁중으로 불림을 받아 '덕완군'으로 봉해지고 19세의 나이에 창덕궁 인정문에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조선 왕위 계승의 관례를 다 무시한 절차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긴했으나 왕으로서 받아야할 대접을 받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철종이 푸대접 받는 왕으로 세운 이유는 아무래도 당시 세력을 잡고있던 안동김씨 세력들이 아둔하고 연약한 인물을 왕으로 내세워 뜻대로 주무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추측됩니다. 실제로도 왕위 기간에 철종을 향해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니 왕을 만만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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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조선의 제25대 임금이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그는 헌종이 대를 이을 자식 없이 죽자 갑자기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로 인해 자기 나름의 정치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철종 [哲宗]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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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조의 직계혈통이 단절되 어 즉위한 방계 출신 군주로 당대 실권자인 안동 김씨 세도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차기 군주로 옹립되었습니다.

    철종은 헌종의 대통을 이어 즉위했으나 항렬로는 헌종의 숙부였고 당시 헌종은 후사를 두지 못하였고 아들 항렬의 인물은 물론 형제 항렬의 종실 인물도 찾기 어려웠고 철종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가 되어 즉위합니다.

    당시 대상 인물로 풍계군의 아들 익평군, 전계군의 아들 영평군과 철종이 있었는데, 익평군의 아버지 풍계군은 신유박해 때 죽음을 당한 은언군의 부인 송씨의 아들이었고 영평군은 아버지가 전계군이기는 하나 어머니의 신분이 매우 미천하여 철종이 선택되었으며 선왕의 유지가 없던 상황에서 왕실 최고어른으로서 준비되지 않은 아들을 위해 수렴청정을 했던 순원왕후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수있습니다.

    당시 20세가 넘어선 익평군이나 영평군은 수렴청정의 대상으로 적절치 못했지만 19세인 철종은 그보다 어려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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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즉, 대신들과 대비의 정권 유지 등 입맛에 맞게 허수아비를 앉힌 것입다.

    순조께서 세자에게 명하여 정사를 대신 처리하게 하셨는데, 세자께서는 어질고 총명하시며 학문을 좋아하여 어진 임금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나, 정사를 돌보신 지 4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왕이 다시 정사를 처리하시다가 돌아가셨으므로 헌종이 즉위하시니, 당시 나이가 8세였습니다. 이에 순원 황후 김씨(순조의 비)가 수렴청정하시고 김병기가 세도를 잡음으로써 정권이 다시 외척의 손에 있게 되었습니다.

    헌종께서 돌아가셨으나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었으므로 영의정 정원용은 전계군 이광(은언군의 아들)의 셋째 아들을 맞아 왕위에 세우고자 하였고, 좌의정 권돈인 은 도정 이하전을 세우고자 하여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였습니다. 마침내 정원용의 주장에 따라 철종을 강화도에서 맞아들여 즉위하게 하고 전계군을 추봉하여 대원군을 삼았습니다.

    또 김문근의 딸을 책봉하여 왕비로 삼으니, 김문근이 영은 부원군이 되어 국가의 중대사에 힘을 보태었고, 순원 황태후께서 수렴청정을 하시면서 모든 정사를 다 김문근에게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김문근의 조카 김병국은 훈련대장이 되고, 김병학은 대제학이 되었으며, 김병기는 좌찬성, 외조카 남병철은 승지가 되어 김씨의 권세가 조정 안팎을 휩쓸었습니다. 이처럼 조정에서 내쫓거나 권력을 잡는 일이 모두 김씨에게 있게 되었으므로, 철종께서는 다만 빈손으로 “네, 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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