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서주 침공시 서주대학살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삼국지의 조조는 악명이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당시 서주침공시에 서주 대학살을 벌인 배경과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학살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는 성격이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인 원소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비인간적인 만행들을 눈에 안 띄게 자행했다면, 조조는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아들을 낳으려면 손중모 같은 자를 낳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인데, 그 이후에 아차했는지 '원본초, 유경승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라고 덧붙였다. 덧붙이긴 했어도 당시 후계분쟁을 벌이고 있던 본인의 자식들인 조비, 조식을 저격한 발언인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입니다. 이 외에도 호관에서 농성 중인 고간군이 항복하지 않자 모조리 파묻어버리겠다고 말했다가 조인의 충고를 듣고 철회하는 것처럼 조조는 몇몇 미디어에 나오는 모습처럼 냉혈한이라기보다는 본인의 감정에 솔직한 다혈질에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조는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해서 도겸을 없애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분풀이로 서주 사람들을 죽였으며 도겸을 향한 복수는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에게까지 화를 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조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입니다. 도겸을 향한 복수심이 정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조가 서주의 도겸을 공격한 것은 조조의 아버지 조숭을 살해당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조숭은 은퇴 후 고향인 초 땅에 살았는데 동탁 토벌전 때 그 일대가 전쟁터가 되자 조숭은 싸우러 나간 조조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을 데리고 서주의 낭야로 이사합니다.
그러던 중 조조는 연주 일대에 근거지를 마련한 군벌로 성장, 193년 아버지 조숭을 연주로 모셔오려했으나 조숭을 비롯한 조씨 가문 사람들은 연주와 서주의 주 경계 부근에서 살해되는데 조숭의 죽음에 관해 두가지 기록으로, 하나는 사서인 자치통감과 도겸전, 오서에 적힌 기록으로 도겸이 조조를 두려워해 조숭을 지키라 부하들을 보냈는데 그 부하들이 조숭의 재물을 노리고 조숭을 죽인 뒤 도망갔다는 기록, 다른 기록은 곽반이 지은 필기 소설집인 세어에 기반을 둔 기록으로 도겸이 부하를 보내 조숭을 죽였다고 합니다.
조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서주로 칼 끝을 향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주침공은 후한말의 군벌 조조가 서주지사 도검이 자기 아버지 조숭을 죽인 것을 빌미로 서기 193년-194년에 걸쳐 서주에 대한 토벌을 행한 사건입니다. 조조가 저지른 서주 민간인 학살에 초점을 맞추어 서주 대학살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립니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총 10만명이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