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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해사이에 방황하는 토끼
달과 해사이에 방황하는 토끼24.01.04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자료가 왜 없는가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과련 자세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안았다는 사실이 좀 의아합니다. 당시 조선은 기록의 나라해도 이상하지 않는 나라인데 왜 자료가 남아 있지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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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기술이 실전되는건 매우 흔한 일입니다.

    기술직의 지위가 올라간건 현대부터에요

    중세, 아니 근대 초반부 까지만 해도 사농공상은 전세계 공통인식이었습니다

    장인은 있으면 좋지만 귀하진 않은 소모품 취급이었죠.

    한국에서도 자격루 복원은 실패했고

    중국만 해도 명나라시절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큰 배인

    "보선(寶船)" 이란걸 만들었었지만

    중국땅이 너무 커서 바다까지 진출할 필요를 못느꼈기 때에

    설계도가 원정끝나고 한세대만에 실전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인쇄기술은 해봤자 활자정도니까요

    안그래도 종이가 귀한데 그림을 그린다면 낭비기도 하고

    복제가 거의 불가능 해져서 기록이 남게될 확률도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술은 글로만 기록되었고, 그래서 세세한 디테일은 후대의 상상에 맞겨졌죠

    다음으로, 현대인에게는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님의 상징이만

    사실 거북선이란 이름은 태종시절부터 나옵니다.

    고려의 과선, 여말선초의 검선처럼 창칼을 배에 박아서 침입자를 막는 설계가 전부터 있었고 이것이 태종때 연구되어 거북선이 되었는데

    하지만 그냥 실험삼아서 만든 프로토타입에 불과 했는지 아니면 명나라따라서

    조선도 바다엔 신경 끄고 살아서 그런건지

    태종 실록에 한두번 언급된 뒤로는 등장이 없었다가

    이순신 장군때 다시 등장했죠.

    자세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태종때와 같은 물건인지 그냥 동명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 중에도, 그 후에도 계속 개조되었기 때문에

    거북이 모양인거 빼면 공통점이 없는 여러 버전이 존재했고

    그 중에서 이순신장군님이 쓴 배가 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거에요

    이순신 장군님도 장인이 아니라 장군이니까 따로 설계도 남길 생각 안했고

    조선왕조실록은 "왕조"기록이니까 당연히 무기설계도 같은거 안그렸으니까요

    심지어 거북선은 사실 철갑선이 아니란게 현재 학계의 정설입니다

    거북선철갑주장은 일본측 기록에만 나오는데

    일본의 기록은 "내가 진건 당연한 일이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과장도 많고

    철갑이란게 등껍질전체가 철인지, 가시정도만 철인지,

    그냥 너무 당당해서 철같다고 한건지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