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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재규어247
푸른재규어24723.06.19

최영장군의 부하였던 이성계가 어떻게 나라를 세울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 최영장군보다 관직이 더 낮은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영장군을 제치고 이성계는 어떻게 나라를 세울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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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말 최영은 군 최고의 장수였고, 이성계는 북방 국경의 최고의 장수이자 호족이었습니다. 최고의 전공을 올리며 지역에서 추앙받던 이성계는 중앙권력에서는 홀대받았고, 그에 대해 그와 그의 수하들은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당시 왕권도 약화되고 중앙군부세력에 좌지우지되는 나라를 뒤엎고 성리학이 기반되는 나라를 꿈꾸던 정도전과 그의 추종세력은 그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도구로 힘이 있으나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이성계를 포섭하였습니다.

    이성계는 함께 하기는 하였으나 역모를 할 생각은 없고, 당시 고려의 상황을 바꿀 필요는 있다 생각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중 최영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판단했고, 그것을 방지하고 속내를 떠보기 위해 명과의 전쟁을 추친하였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성계는 반대하였으나 결국에 참여하게 됩니다.

    진군하던 중 위화도에 이르러 폭우로 강이 범람하고 전염병 등으로 진군이 어렵자 진군이 어렵다 최영에 장계를 올렸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에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고 조민수와 결탁하여 먼저 최영을 치고 수도를 장악하여 왕을 폐위시키고 새롭게 공양왕을 옹립합니다.

    그러던 중 결국 정도전, 조민수 등 함께 했던 세력들을 죽이고 공양왕도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며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습니다.

    결국 명분을 내세웠으나 군사쿠군사로 정권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우왕과 최영장군은 요동정벌로 북방정책을 펼쳤으나 이성계는 4불가론(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여름 장마철로 화살 등 무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전염병 등이 걱정된다. 농사철에 군을 일으키면 안된다. 북쪽을 공격하면 왜구들이 설친다.)으로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하고 부패한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는 역성혁명을 단행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는 황산 전투 등 여러 가지 전투에서 승리하여 고려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군사적 업적을 많이 쌓았습니다. 이렇게 인지도와 명성을 쌓은 상태이므로 이성계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관직과 상관없이 친원파와 친명파 간의 대립으로 보시면 됩니다. 기존 기득권 세력이 친원파라면 신흥 세력이 친명파입니다. 그리고 명분도 있습니다. 이성계는 끝까지 요동 정벌에 대해서 반대했지만(4대 불가론) 왕명에 따라서 출전한 것입니다. 떠오르는 세력이 명나라이고 요동을 정벌하기엔 군대 숫자(5만명)도 적어서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쿠데타를 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영과 이성계는 원래 관계가 좋았지만 요동 정벌을 두고 이성계는 반대를 하고 최영은 계속 요동 정발을 주장 했습니다. 최영은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한 출정을 강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출정하지 않고 우왕과 함께 고려에 남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는 팔도 도통사로서 최영 본인이 직접 출정해 군사를 지휘하려는 것을 최영의 장인인 우왕이 나서서 극구 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성계가 5만의 대군을 이끌고 요동을 정벌 하러 나섰고 결국 위화도에서 회군 함으로써 고려는 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