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큰형 정약현 말고는 모든 집안 사람들이 전부 다 천주교 신자 입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인 이승훈은 정약용의 누이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1784년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해 서울 명례방에서 한국 천주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참형을 당하고 순교당했습니다. 정약용의 맏형은 정약현(丁若鉉. 1752~1821)이다. 정약현의 부인의 동생은 이벽인데 이벽은 초창기 한국 천주교 전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조선 천주교 교단 조직을 결성해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약현은 훗날 백서(帛書) 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黃嗣永)을 사위로 들였는데 그러나 정약현은 끝까지 천주교와 거리를 두었다고 합니다.
정약용 형제의 둘째는 정약전입니다. 천주교를 신봉했고 1801년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를 갔으며 그곳에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했습니다. .셋째는 정약종 입니다. 정약용 형제 가운데 천주교 전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노인 정약종은 1800년경 '주교요지(主敎要旨)'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정리한 천주교 교리서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이 책은 천주교가 보통 백성들 속으로 파고 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당시 정약종은 천주교의 교리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책을 쓸 수 있었다. 또한 평신도 모임을 이끌어 천주교의 대중화와 일상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정약종의 부인 유조이, 아들 정하상(丁夏祥)과 정철상(丁哲祥), 딸 정정혜(丁情惠)는 모두 신유박해와 기해박해(己亥迫害․1839) 때 순교함으로써 정약종의 가족은 모두 순교자가 되었는데 유례가 없는 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