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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우람한스컹크18323.08.15

부여라는 국가의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나요?

고구려와 백제의 기원이라고 하는 부여는 한민족과도 당연히 연관성을 가지고있는데 부여라는 국명이 가지고있는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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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란 지명은 단군 왕검의 넷째 아들 이름인 부여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또한 부소산은 왕검의 둘째아들 부소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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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군요.

    ‘부여(夫餘)’란 지명은 단군 왕검의 넷째 아들 이름인 부여에서 유래되었고,

    부여의 유명 관광지인 부소산은 단군 왕검의 둘째 아들 이름인 부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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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국가인 부여의 명칭에 대해서는≪사기≫이전 문헌인≪山海經≫에 나오는 ‘不與’라는 표기를 부여로 보거나 원뜻이 밝(神明)에서 유래하여 개발→滋蔓→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로 변화한 데서 연유하였다는 설이 일찍이 제기된 바 있는데 그 근거는 부여의 중심지역이 송화강 연안의 동북평원 일대이고, ‘벌’이나 ‘부리’가 서라벌·古沙夫里 등 삼국시대의 지명 어미에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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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는 평야를 의미하는 벌 에서 연유했다는 설과 사슴을 뜻하는 만주어의 puhu라는 말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평야를 의미하는 부리 등과 동음동의어로 부여의 국가적 위치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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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라는 국명은 그 의미가 '벌(평야)', '사슴', 종족명인 '예(濊)'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이후 연구를 통하여 고대 한민족에게 신성한 나무로 숭배되었던 '소나무'의 뜻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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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부여’라고도 한다. 국호인 부여는 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에서 연유했다는 설과, 사슴을 뜻하는 만주어의 ‘puhu’라는 말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부여는 서기전 1세기의 중국측 문헌에 등장하므로 이미 그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에 관해서 중국측 기록인 『논형(論衡)』과 『위략(魏略)』에서는, 시조인 동명(東明)이 북쪽 탁리국(橐離國)에서부터 이주해와 건국하였다 하며,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서는 당시 부여인들이 스스로를 옛적에 다른 곳에서 옮겨온 유이민의 후예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는 부여국의 중심집단이 어느 시기에 이동해왔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그 구체적인 이동 시기나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근래 북류 송화강과 눈강(嫩江)이 합류하는 지역 일대인 조원(肇源)의 백금보(白今寶)문화나 대안(大安)의 한서(漢書)문화를 동명 집단의 원주지인 탁리국의 문화로 간주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성이 부족하다.

    부여국은 서로는 오환(烏桓)·선비(鮮卑)와 접하고, 동으로는 읍루(挹婁)와 잇닿으며, 남으로는 고구려와 이웃하고, 서남으로는 요동의 중국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3세기 전후 무렵 영역은 사방 2천리에 달하는 광활한 평야지대였다.


    부여국의 중심지역인 부여성(夫餘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장춘(長春)·농안(農安) 부근으로 비정하는 설이 일찍이 제기되었다.


    부여성은 고구려의 북부여성이며 발해의 부여부(扶餘府)인데, 요(遼)나라가 발해를 멸한 뒤 부여부 지역에 황룡부(黃龍府)를 설치했고, 그것이 금대(金代)에 융안부(隆安府)가 되며 오늘날의 농안부근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와는 달리 황금의 명산지이며 금나라를 세운 완안부(完顔部)의 발흥지인 아성(阿城) 부근으로 비정하는 설, 창도(昌圖) 북쪽의 사면성(四面城) 지역으로 보는 설, 북류 송화강 하류의 오늘날의 부여(扶餘)로 추정하는 설 등이 제기된 바 있다.


    한편 이들 지역에서 뚜렷한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산성이 있고 한대(漢代)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며 청동기시대에는 서단산문화의 중심지였던 길림시(吉林市) 일대를 부여국의 중심지로 비정하는 설이 근래 제기되었다. 나아가 길림시 지역이 부여국의 초기 중심지였고, 농안 부근은 후기 중심지였다고 여기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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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부여라는 국가의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부여라는 이름이 만주어의 "푸후(puhu)"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푸후"는 "사슴"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부여의 왕족은 사슴을 숭배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부여라는 이름이 사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설로는 부여라는 이름이 만주어의 "푸(pu)"와 "여(ya)"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푸"는 "평평한 땅"을 의미하고, "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부여라는 이름은 "평평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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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도 역시 여러 의견이 있는데, 대부분 평원, 강 이름, 산 이름 등에서 유래했다는 지리적 면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선, 부여의 원뜻이 ‘밝(神明)’에서 비롯되어 ‘벌’로 변화하였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여기서 ‘벌’ 역시 여러 뜻으로 변화하다가 평야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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